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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육도 소비자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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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육도 소비자가 주인이다

입력
2000.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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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학자 다케우치 야스오는 ‘정의와 질투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일본의 교육이 맛없는 배급쌀이라고 개탄했다. 일본보다 더 획일적인 우리나라의 교육, 특히 중등교육은 형편없는 배급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근래에 교육과 관련하여 필자가 겪은 부끄러운 경험을 고백해 볼까 한다. 필자는 3년 전에 미국에 안식년을 1년간 다녀왔다.

웬만하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중3짜리 큰 아이를 남겨두라는 주위의 권고를 흘려 듣고 데리고 들어왔다. 과다한 과목, 암기식 교육에 재미를 못붙인 녀석은 예전처럼 다시 컴퓨터 게임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안되겠다 싶었다. 뒤늦게 수소문하여 작년말에 한 미국고등학교에서 봄학기 입학 허가를 받았다.

국적법에 무식한 필자는 아이가 가지고있는 미국여권으로 들고 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귀국하여 외국인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국인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여권이 있어야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18세의 내국인은 병무청이 2개월 이내만 국외여행을 허가해 주었다.

만 18세가 안된 이중국적상태인 점을 감안하여 미국에 유학갈 수 없겠느냐니까 안된단다. 올 여름 해외조기유학을 허용할 것이라는 신문보도에 기대를 걸었지만 대통령령 제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포기해야 했다.

자녀의 중차대한 교육과 장래문제에 미리 용의주도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씁쓸했다. 평소에 경제학자로서 법과 규정을 가볍게 알다가 된통 당한 셈이다.

동시에 국제화시대에 전혀 안맞는 경직적인 규제도 한심했다. 이미 나가 있는 3만명의 조기유학생 중 남학생들이 18세가 되면 새삼 귀국하겠는가.

현지 대학에 입학한 후 입영연기신청을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내에 있는 18세 아이도 보호자와 공직자의 보증서를 받고 내보내 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것 아닌가. 아니 아직까지는 고졸 이상만 해외유학이 허용된다고? 그럼 그렇게 많은 불법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는 말인가.

현 정부가 들어서서 고등교육 분야에서는 경쟁과 자율의 폭이 커져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중등교육은 무경쟁과 규제, 타성이 지배하는 고요한 늪이다.

중등교육 개혁의 핵심은 필수과목의 수를 서구선진국처럼 5∼6개로 대폭 줄이고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국내외로 넓혀 주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경제학의 기본원리는 소비자의 선호가 존중되는 것이다. 소비자는 불량상품을 외면하고 우량상품을 찾는다.

교육소비자인 학생들의 과목선택권·학교선택권이 원천봉쇄된 중등교육은 불량상품이다. 특히 중간 성적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수용소 생활을 부과하는 고약한 위해상품이다.

이런 숨막히는 현실에서 대체재로서의 조기유학수요가 번지고 교육개혁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소비자주권의 당연한 발로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소비자주권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요체이다.

정부가 이런 참개혁을 중장기과제로 미루면서 머뭇거리는 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교육평등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국민정서와 취약한 교육예산이라는 무거운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필칭 교육개혁을 내세운다면 두 걸림돌을 치워 나가는 대승적인 리더십을 정부가 발휘해야 한다.

오늘날 의료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중등교육이 곪아 터지고 있는 것은 이 부문들을 고고하게 ‘사회주의부문’으로 남겨 두고 있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암담한 교육현실에 절망한 일단의 일본 경제학자들이 1990년대부터 규제의 산실인 문부성의 철폐와 교육개혁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일본문화’가 상륙하기 전에 가시적인 참교육개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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