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육군 모사단에서는 한 노병(老兵)의 퇴역식이 ‘조용히’ 치러졌다.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금화지구에서 포로가 됐다 47년만인 지난 7월 제3국을 통해 귀환한 허형직(68)씨가 그 주인공.군 당국은 이등중사(상병)였던 허씨의 계급을 하사로 진급시키고, 그동안 지급 못한 급여와 주택지원금 등 3억5,000만원을 전달한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퇴역식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했다. 허씨의 이름마저도 가명 처리됐다.
지난 2일 비슷한 처지였던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 장면과 비교해 보자. 당시 판문점에는 국방장관급인 김일철 인민무력상이 직접 나와 이들을 맞았다.
장기수들은 벤츠승용차로 모셔져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대적인 환영행사에 참석했고, 이들을 위한 행사는 지금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허씨의 ‘초라한 퇴역식’에 대한 군의 해명은 고작 ‘안전상의 이유’. 그렇다면 1994년 11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이 참석한 조창호(趙昌浩)씨의 퇴역식이나 불과 2년전 양무환·장무환씨 등 다른 국군포로들의 공개 퇴역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물론 비전향장기수의 북송은 북한측이 정면으로 요구해 따낸 정권적 차원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탈출해온 국군포로의 귀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대 때 구국전선에 뛰어든 뒤 수십년을 돌아 귀환한 노병은 당연히 걸맞는 국가적 예우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를 이유로 모든 면에서 필요이상 위축되고 조심스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딱할 뿐이다.
황양준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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