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사고인가, 미국측의 의도된 과잉대응에 북한측의 자존심이 맞선 외교적 충돌인가.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미 불발사건으로 북미관계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꼬여가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빚어진 북미간의 갈등이 서로의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끝날 지 혹은 상호불신감을 고조시키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아 이번 사건에 대한 양측의 시각이 판이한 점으로 미루어 조기에 매듭지어 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수헌 외무성부상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의 사전각본에 따라 꾸며진 고의적인 도발”이라고 규정한뒤 “미국의 이중 잣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민간항공사측이 미연방항공국(FAA)의 관계규정에 따라 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라고 전제하고 “경위야 어떻든 유감이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사건이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김 상임위원장 일행에 대해 ‘테러지원국가’의 일원임을 내세워 강도높은 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줄곧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시켜줘야만 북미 고위급회담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북미간의 가장 핫이슈인 ‘테러지원국’을 이유로 외교마찰이 터져나와 당분간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측이 다양한 물밑접촉을 통해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어 북한의 명분만 세워준다면 의외로 사태가 쉽게 일단락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관계자는 이와 관련, “미국이 이번에 이례적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만찬에 김 상임위원장을 초청하는 우호적 제스처를 보였던 점으로 미루어 사전에 의도된 행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북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미국측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면 예상보다 빨리 상황이 복원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데서 불거진 사안임을 감안하면 당분간 북미간에 테러지원국 해제문제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은 틀림없다. 북미 관계가 냉각되면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한국 정부측도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김하중외교수석 일문일답
청와대 김하중 외교안보수석은 김영남위원장의 방미 무산에 대해 “북·미간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_북한측이 이를 통보해왔나.
“보도가 나온 뒤 우리가 연락을 취하니까 주유엔 북한대표부가 ‘오지 못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_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영향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미 관계다. 미국이 클린턴대통령 만찬에 김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우호 제스처다. 미국도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북·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미국의 뜻이 전달되면 상황이 복원될 수도 있다고 본다.”
_북한의 이미지 개선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않을까.
“북한이 과잉 반응을 했는지, 검색이 지나쳤는지는 좀 더 지켜보자. 동정적인 여론도 있을 수 있다.”
_미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중인가.
“미국 정부가 김위원장의 뉴욕행 무산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으니 뭔가 하고 있을 것이다.”
뉴욕=이영성기자
■불량국가란
‘불량국가 또는 깡패국가(Rogue State)’는 미사일 발사나 테러 위협과 관련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은 국가를 통칭하는 용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자주 사용하면서 외교용어가 됐다.
미국이 매년 5월 발표하는‘테러지원국’과는 구별되지만 통상적으로 테러지원국이 불량국가의 범주에 속한다.
현재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수단 등 7개국. 미국은 테러지원국에 대해 교역금지, 일반특혜관세(GSP)적용 배제, 국제금융기구 차관 반대 등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 미 연방항공국(FAA)은 테러지원국 탑승객들에 대해 엄격한 보안검사를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6월 불량국가로 불리던 일부 국가의 행동이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보다 유연한 개념인 ‘우려대상국(states of concern)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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