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물 공기 흙 및 생태계 전반에 걸쳐 실시한 환경호르몬 잔류 실태조사는 이 분야 최초의 종합적 데이터가 공개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모유와 음식물은 물론 음식용기 등에서 환경호르몬 중 가장 맹독성인 다이옥신이 과다하게 검출되었던 적은 있지만 우리 생활환경 전체에 퍼진 오염정도를 파악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는 그 결과에 화들짝 놀랄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고 대책을 뒤로 미룰 만큼 안도할 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조사 결과 환경호르몬 오염정도가 일본보다는 낮다는 것이 환경부의 평가다. 그러나 표본추출과 조사의 정밀성을 100% 믿는다고 전제하더라도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공기 중 다이옥신 함유량이 일본과 비슷하며 반월공단 주변은 2.5배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아직 세계보건기구의 허용치를 초과한 것은 아니지만 오염도가 심하다는 점에서 대책 강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수컷 물고기의 정소에서 암컷의 난소막 모양의 조직이 발견됐고, 황소개구리 암컷의 난소에서 수컷정소의 조직이 발달하는 것이 확인됐다.
환경호르몬이 무섭다는 것은 바로 수컷이 수컷답게 자라고 암컷이 암컷답게 자라는 동물의 내분비작용에 간섭하여 성(性)을 교란시키는 주범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분비교란물질의 역할에 대해서는 60년대 미국의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에서 제기됐고, 90년대 중반 티오 콜본의 역작인 ‘도둑맞은 미래’에서 매우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신빙성 있는 가설이 설정됐다.
특히 환경호르몬은 공기나 물속의 잔류량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먹이사슬을 따라 포유류의 체내 잔류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에서 특정지역으로 국한할 수 없는 오염예방대책의 난제가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 젊은 남자의 정자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나, 우리나라에서 모유의 다이옥신 잔류량이 많다는 보고 등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들로 여겨지고 있다.
21세기 정부의 역할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도를 모색하는 일이라면 환경호르몬에 대한 종합조사실시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규제완화라는 이름아래 환경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식품에 대한 관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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