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의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이 5일 오전 끝났다. 두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평화조약 문제에 관한 공동성명’과 양국 경제협력의 새로운 지침인 ‘러일 무역경제분야 협력심화 프로그램’(푸틴·모리 플랜)을 발표했다.초점인 평화조약 문제에 대한 양측의 합의는 2000년까지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크라스노야르스크 합의’정신에 바탕해 교섭을 계속한다는 것 뿐이었다.
영토문제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워낙 커 평화조약 교섭의 결렬을 막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이다. 1993년 도쿄(東京)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공동선언에 ‘에토로후(擇捉)·구나시리(國後)·시코탄(色丹)·하보마이(齒舞)섬의 귀속 문제 해결’을 명시한 것이 그나마 일본측에게는 위안이 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가 집착한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양국이 체결한 15개 합의문 가운데 8개가 경제·기술 협력에 관한 것이다.
특히 1997년의 ‘옐친·하시모토(橋本) 플랜’을 확충한 ‘푸틴·모리 플랜’을 채택, 시베리아·극동 개발을 일단 가시권에 넣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푸틴·모리 플랜’은 수치 목표는 담지 않았지만 일본의 대 러시아 투자 확대, 시베리아 철도 현대화 협력, 사할린 석유·천연가스 개발을 포함한 시베리아·극동의 공동 자원 개발 등을 내용으로 삼았다.
이미 홋카이도(北海道)와 사할린 사이의 해저터널 건설을 통한 시베리아 철도의 연장이 양국 전문가들에 의해 검토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홋카이도와 사할린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사할린에 대형 천연가스 발전소를 세워 홋카이도에 전력을 공급하자는 등 러시아측의 다양한 제안이 잇따랐다. 대형 사업의 고갈로 위기를 맞은 일본 기업에는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영토문제 해결 전망이 서지 않는 한 적극적인 경제협력에 나서기 어렵다는 태도여서 구체적 실현에는 아직 걸림돌이 많다. 정상회담에서 모리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투자확대와 대형 개발계획 참여 요청에 대해 투자환경 개선과 분쟁 해결을 거꾸로 요구했고 사할린 개발에 대해서는 “민간기업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차가운 자세를 보였다.
각각 영토와 돈을 수단으로 삼은 양국의 대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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