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단절돼 온 남북한 문화가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갈라져 발전해 온 남북 문화는 이제 두 문화간의 단순 접촉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민족적 과제의 하나로 인식돼야 한다.조급해서도 안되지만, 무신경해서는 더욱 안된다는 생각으로 '新남북문화를 생각한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전문가들로부터 남북문화의 현안과 전망, 해결해야할 과제를 들어 본다. 요즈음 남북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욱 기쁜 것은 남과 북이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통일을 앞두고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더욱 구체화하여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언어 문제도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중요한 해결 과제이다.
현재 남과 북의 언어는 별 불편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좀더 대화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표현들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남과 북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된 어휘 변화가 상대방의 귀에 걸리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낱말들은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와 같은 조정이 여의치 않은 낱말은 표준어를 복수로 인정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언중들이 선택해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교적 고유어를 많이 살려 쓰는 북쪽과, 한자어와 외래어 등을 많이 포함한 남쪽의 어휘 변화가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크게 느끼는 남북의 언어 차이, 즉 표준어 통일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남과 북에서 달라진 자모의 순서는 빨리 합일을 찾아야 한다.
남한에서는 'ㄱ, ㄲ, ㄴ … ㅎ'의 순서이지만, 북한에서는 'ㄱ, ㄴ, … ㅎ, ㄲ…'의 순서이며, 북한에서는 초성의 'ㅇ'(예: 아이)은 자음으로 보지 않는다.
모음도 배열 순서가 남북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사전을 편찬하거나 기타 언어 정보화 작업을 해 나가는 데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언어 표현들을 자료화하거나 이용할 때에 남과 북에서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국어 정보화를 위해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남과 북이 컴퓨터에서 한글 코드가 달라 서로간에 정보 교환은 물론 공동 작업이 원칙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남과 북이 문자 및 부호의 체계와 의미값을 달리하게 된 것은 현재로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만약 이것이 고착된다면 앞으로 남과 북이 하나의 언어권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다. 문자 부호의 코드 통일은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이 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남과 북의 국어 연구 관련자들이 빨리 만나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통일 국어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이 때 논의의 출발은 어느 한 쪽의 우월성 강조가 아니라 양쪽에서 장점을 찾아 합치는 것이며, 문제에 따라서는 무리하게 합일을 이루려다 논의의 계속성을 잃기보다는 복수를 인정하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우리처럼 얼마 동안 둘로 완전히 나뉘었다가 다시 결합하여 통일 조국을 이루려는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드문 일이다. 그것은 언어 면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앞으로의 통일 국어를, 이제까지 발전시켜 온 양쪽의 자산을 아우르는 상승적 통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국어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언어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합의된 내용은 남과 북에서 빨리 교육에 옮겨야 한다. 그 내용 안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진정한 남북 통일은 상대방을 이지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일체감을 갖는 것이다. 언어는 서로를 충실하게 이해하고 느끼는 데 매우 큰 힘이 되어 준다.
남과 북이 모두 서로의 언어, 특히 합의한 언어 관련 내용을 익히는 데 성실하게 노력하여야 한다.
동서 독일이 다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자신들이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에는 언제나 높은 슬기와 단합된 힘을 보여 왔다.
그 어느 민족보다 뛰어난 우리 민족이야말로 남과 북의 언어 문제를 비롯하여 합의하기에 복잡하고 힘든 수많은 문제들을 앞으로 잘 풀어나가 멋진 통일을 이룩할 것이다.
/홍 종 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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