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설전을 보노라면 마치 거짓말 경기를 구경하는 듯 하다. 상대편보다 더 그럴듯한 말을 꾸며내려고 애를 쓴다. 촌철살인의 개그식 표현이면 더 더욱 좋다.억지를 부려서라도 상대방을 깔아뭉개면 되니까. 문제는 누구도 그 거짓말들을 흥미있게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대개가 곧 거짓이거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에 관중은 이들의 경기를 외면한다.
그런 웃지 못할 촌극이 또 다시 벌어지고 있다. 선거비용 실사 개입사건과 한빛은행 대출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입씨름이 그것이다.
16대 첫 정기국회는 이미 어둠의 터널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민주당은 선거비용 실사 과정에 개입했음을 시사한 문제의 발언이 노출돼 물의를 일으키자 이를 ‘실언’, ‘법률용어 사용의 잘못’ 등으로 변명한다.
그러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한나라당은 예의 특별검사제 도입을 들고 나온다. 또 특별검사제 타령이냐며 검찰은 지겹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던 터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16대 국회의원선거 수사처리 보고서’라는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다.
진실은 무엇인가. 왜 걸핏하면 특별검사제가 들먹여지는가. 진실이 시원하게 규명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한빛은행 대출의혹 역시 고위 공직자들의 개입여부나 대출액의 용처 등 전형적인 권력형 청탁비리의 냄새가 물씬 나지만 쉽사리 진실이 밝혀질 것 같지는 않다. 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 사건을 쟁점화하여 남북정상회담으로 비롯된 정치적 곤경을 탈피하는 국면전환의 전기로 삼고 그 추세를 대선까지 몰고 가려는 태세이다.
여당은 이를 정치공세라고 비난하지만, 국회를 벗어나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는 것이 문제라면 몰라도, 야당이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집권 후반기의 초입에 불거져 나온 이 두 사건이 선명하게 해결되지 못한다면 정치적 파행이 거듭되고 종당에는 통치의 위기까지도 초래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가나 권력엘리트의 범죄를 통제·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은 현대 법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의 하나다. 권력의 품계가 높아질수록 진실 규명과 처벌이 어려워진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비용 실사개입이나 한빛은행대출의혹은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집권당과 고위공직자들이 그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하여 사법방해와 청탁비리를 저질렀는지 여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하면 언론을 틀어막고 법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던 우리나라 정치 경제 엘리트들의 법 의식과 행태가 더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비난하는 야당 역시 과거 집권시절 그같은 혐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현안은 어디까지나 두 가지 의혹사건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의 성공적 항해, 특히 어렵사리 조성된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두 의혹을 공명정대하게 해결해야 한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았겠는가. 허위보고를 받지 않았다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지 않겠는가. 검찰 또한 “수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지만 진상을 규명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소임을 다할 때 특별검사제를 들먹이는 야당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엘리트들의 잘못된 법의식과 행태는 그 어떤 준법운동이나 공직윤리캠페인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선명한 사실규명과 엄정한 법적용이 절대적이다.
옷로비사건 등 교훈을 생각하자. 대통령과 검찰은 왜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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