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리도섬이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김기덕 감독의 `섬' 이야기로 가득 하다.31일 열린 첫 기자 및 배급자를 위한 시사회 도중 관객이 졸도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700석의 팔라 갈릴레오 극장을 가득 메운 채 `섬'의 상영을 시작한 30분쯤 후, 여자 관객 두 명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옆 자리 관객이 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2분 동안 영화 상영이 중단됐다. 남자 주인공 현식(김유석)이 낚시 바늘을 입에 넣고 잡아당기는 자해 장면을 보고 난 직후였다.
국내에서도 `엽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의 정면으로 베니스에서도 역시 충격을 던졌다.
졸도 소문은 삽시간에 리도섬에 퍼져 영화제에 참가한 각국 영화 관계자들은 물론 섬 주민들에게까지 화제가 됐다.
김기덕 감독과 남녀 주연 배우인 김유석, 서정에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초반 궂은 날씨처럼 가라앉은 영화제 분위기를 들뜨게 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섬'을 수입해간 일본ㆍ프랑스 언론과 베니스 영화제 공식 방송인 텔레피유 정도였던 인터뷰가 30여곳으로 늘어났고, 1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 역시 칸의 `춘향뎐' 보다 3배나 많은 100여명의 외국 기자들이 참석했다.
같은 날 열린 공식 시사회에도 1,000여명이 몰려 `섬'의 실체를 알고 싶어했다.
호기심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식 시사회 참가자들은 전날의 `사건'과 달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보았고, 3번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부 젊은 관객들은 시사회가 끝난 뒤 "이 영화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언론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레푸블리카'는 같은 날 상영된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닥터 T와 여자"의 관심을 무색케 한 영화, 단순한 `충격'보다는 인간의 고독을 강렬하게 표현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알베르토 바르메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일 밤 바인 호텔에서 열린 `섬' 파티에 직접 참석해 감독과 배우를 칭찬하기도 했다.
외국 기자 및 평론가들의 질문도 충격과 호기심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전제로 한 것들이었다.
"우리만 놀란 것이냐? 한국은 어땠느냐?"고 물으면서도 "인간의 고독을 강렬한 비극으로 다뤘다"는 반응.
"영화가 슬프게 끝나는 것이 한국적인 사조때문이냐, 감독 스타일이냐" "여주인공 희진(서정)이 말을 못하는 이유는 뭐냐"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의 아름다운 표현은 어떻게 연출했고 영화에서 어떤 의미인가" 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따금 이탈리아 일간지 `가제티노'의 안도넬라 페더리치 기자처럼 "작년에 `거짓말'은 어린 여자를 학대하고, 올해 `섬'은 끔찍한 자해를 하는 등 왜 한국영화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래도 "깊이 있고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결론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섬은 이번 영화제에서 기대 이상의 화제와 관심을 모으면서 `낚시 바늘의 충격'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수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 김기덕감독 인터뷰
'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유럽 사람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동요를 일으킬만한가 궁금했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의 표현방식이 그것을 통한 긴장과 심리의 자극을 그들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화는 도덕을 규정하는 장르가 아니다. 다양한 형태, 심지어 왜곡된 형태까지 수용하는 곳이다. 베니스가 '섬'을 초청한 것도 바로 나의 표현양식을 보여주고 토론과 논쟁을 해보려고 한 것같다.
이번 베니스영화제 진출을 계기로 외국에 내 영화의 시장이 더 많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베니스=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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