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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엉터리 외화자막 넘어가는게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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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엉터리 외화자막 넘어가는게 미덕?

입력
200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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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는 한국에서 보느냐 중국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우선 볼 수 있는 영화의 양이 다르다.홍콩, 대만 지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를 접할 수 있지만 중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대형영화(블록버스터)의 수입 편수를 1년에 10편 이내로 제한하였었다. 우리는 그저 위에서 선택해준 영화를 열심히 보면 되었다.

개봉일자도 다르다.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 한국에서는 최단시일 내에, 심지어 프랑스나 일본보다도 일찍이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좀 느리다.

갓 출시된 영화의 수입가가 턱없이 높으면 가격이 내려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번역방식 또한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자막 처리를 한다.

하지만 중국은 거의 모든 외화가 더빙 형식을 취한다. 유학 나오기 전까지 내가 본 외화의 서양인들은 온통 ‘중국어로만 이야기를 하였다’.

더빙하는 것에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 교육수준이 균등하지 않고 한자의 특성상 다른 언어권에 비해 문맹·반문맹수가 많아 자막처리 한다면 상당수 사람들이 외화를 볼 수 없게 된다.

원작 그대로 감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중국의 외화번역의 질은 상당히 높다. 금전과 시간에 크게 쫓기지 않고 국가에서 전문인력을 투입하여 진행하기 때문이다.

외화를 역제편(譯製片: 번역제작한 영화)이라고 부르듯이 그 더빙과정은 엄연한 영화제작과정이나 다름없다.

며칠 전에 대만감독 이안이 중국어로 만든 할리우드 영화 ‘와호장룡’을 보았다. 완벽한 번역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보고나서 가슴이 몹시 답답해졌다.

1930~40년대 무협비정(悲情)소설가 왕두루(王度盧)의 원작 ‘臥虎藏龍’을 그 극장에서는 ‘왕두루라는 원작’으로 번역하였다.

군데군데 엉뚱한 번역도 모자라서 ‘페이러’(貝勒: 청나라황제의 아들 즉 왕자에 대한 일반호칭)같은 일반명사도 번역하지 않아 원어를 모르는 친구는 시종 고유명사인 사람이름으로 착각하였다.

극중인물 이름도 주윤발은 무빠이라는 음역으로, 양자경은 수련이라는 직역으로, 다른 두 주인공은 호와 용이라는 약칭으로 뒤섞어 놓았다.

영화는 원작에 꼭 충실하지 않아도 되지만 번역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락으로 보는 영화를 가지고 괜히 고민한다고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하기야 다들 그런가보다 지나칠 건데 대충대충 번역한다고 큰일나겠는가. 어차피 저승에 있는 왕두루나 미국에 있는 이안은 한국어를 모를 건데.

/추웨이쿠웨이후아·안양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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