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일본 양국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인가.3일 일본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쏠리는 관심이다. 양국사이에는 ‘북방 4개 도’의 영유권 문제와 경제협력 및 평화조약 체결 문제가 해묵은 현안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새로 등장한 푸틴 대통령의 심중과 복안이 이번회담에서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푸틴 대통령은 5일까지 일본에 머무는 동안 모리 총리와 3차례의 정상회담을 갖는다.
양측은 이번에 시베리아·극동지역의 에너지 개발과 무역촉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무역·경제 분야 협력 심화 프로그램’(모리·푸틴 플랜) 등 7개 경제협력 문서에 합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양국의 경제 협력은 크게 진전된다.
그러나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 4도’, 즉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의 영유권 문제 해결과 직결된 평화조약 체결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마땅한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에토로후(擇捉)·구나시리(國後)·시코탄(色丹)·하보마이(齒舞) 등 4개섬은 1855년 러일통상우호조약에서 일본 영토로 확인됐으나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소련에 점령됐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 영유권이 확인됐다는 것이 일본측 해석이나, 러시아는 조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쟁 자체를 피해 왔다.
양국은 1993년 도쿄(東京)선언에서 ‘영토문제 해결을 통한 평화조약 조기 체결’을 다짐, 영토문제의 존재를 확인했다.
1997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에선 ‘2000년까지 평화조약 체결 노력’을 못박았다. 낙후한 시베리아·극동 지역, 특히 4개섬에 대한 일본의 경제 협력을 끌어 들이려는 러시아의 복안이 들어간 것으로 일본의 기대를 부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기운의 고조와 함께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의 영토문제 해결 자세는 크게 후퇴했고 옐친정권 말기 러시아는 평화조약과 영토 문제 분리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1998년 4월 ‘북방 4도’ 이북에 국경선을 그어 일본의 잠재적 주권을 인정하는 한편 당분간 러시아의 행정권을 인정한다는 ‘국경선 획정 방식’을 내놓은 것도 러시아를 잡아 두려는 전략이었다.
애초에 옐친 전대통령의 임기를 염두에 둔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은 그의 돌연한 사임으로 퇴색했다. 푸틴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러시아에서는 4개섬에 대해 러시아의 주권을 유지하되 일본인의 생활권·지방행정 참여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2국 1체제’방식이 거론됐다.
일본의 국경선 획정 방식에 대한 거부이자 그동안의 교섭을 원점으로 돌리는 구상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크라노야르스크 선언의 정신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칠 전망이다. 대 러시아 경제지원 분야에 진전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현안은 돈과 영토를 바꾸는 교섭이어서 완전한 해결의 앞길은 아직 멀다.
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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