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휴일마다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골프장으로 달아난 것이 마음에 걸렸던 한 사나이가 어느 날 골프장에서 돌아와 무심결에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도 골프를 배워보지 그래. 애들도 다 컸으니 휴일에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쉽지 않잖아. 서너 달 열심히 연습하면 골프장에 데리고 갈게.”“정말이에요?” 아내가 반색하며 말했다. “물론.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풀고 여러모로 당신한테 좋을 것 같애.” 사나이는 운동하고는 거리가 먼 아내가 설마 골프연습장에 나갈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약속했다.
몇달 후 어느 날 아내가 불쑥 말했다. “골프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골프라니?” 사나이가 놀라자 아내는 “벌써 골프채 잡은 지 3개월이 지났어요. 연습장에선 필드에 나가도 충분하다고 하던데요. 당신이 머리 올려주지 않을래요?”하고 말했다. 순간 무심결에 아내에게 한 약속이 기억났다. 사나이는 얼떨결에 “좋지!”하며 친구부부와 2주일 후 골프약속을 했다.
그 날이 왔다. 일주일 전부터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처럼 들떠 있던 아내는 골프장에 도착해서는 거의 흥분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녹색의 세계, 복잡한 세상사는 잊은 듯한 골퍼들의 한가한 모습 등 아내에겐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기 전 친구부부는 골프선배로서 상기된 아내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친절하게 조언해 주었다.
사나이도 초반 몇 홀까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처음이니까 배우겠다는 자세로 마음 편하게 먹어.” 이런 말을 들을수록 아내의 샷은 망가졌다. “연습장에선 잘 맞았는데…” 아내는 처음 몇 번 실수를 하자 이렇게 중얼댔으나 실수가 계속되자 말을 잊어버렸다. 미스샷이 이어지자 사나이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어떻게 배웠기에 기본도 안 돼 있어?” “레슨비만 날렸구만.” 자제력을 잃은 사나이의 말투도 거칠어졌다. 용케 참아온 아내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볼을 치려던 골프채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그래 나는 멍청이 바보예요. 똑똑한 당신이나 실컷 쳐요!” 아내는 등을 돌려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그제야 사나이는 제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나이는 수 개월동안 악몽같은 냉전을 치러야 했고 아내는 이를 악물고 골프연습에 매달려 보기플레이어가 되었으나 남편에게는 두 번 다시 골프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것은 운전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어렵다. 아내와 함께 골프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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