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으로 검찰에 쫓기고 있는 이운영(52)씨의 기습적인 기자회견이 화제다. 그는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으로 일하던 작년 4월 건축자재 도소매업체인 (주)아크월드에 대한 추가대출 신용보증 청탁을 거부했다가 직장을 쫓겨난 사람이다.비리 연루혐의로 수배까지 당해 쫓기고 있는 그는 이날 몇몇 신문사 기자와 만나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비서관에게서 아크월드를 잘 도와주라는 부탁전화를 받았다는 말만 하고 황급히 회견장을 떠났다.
■ 목소리만으로 면식도 없다는 공보수석에게서 온 전화인지를 어떻게 알며, 상대가 처음부터 공보수석이라는 신원을 밝혔는지 여부 등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많이 들은 목소리여서 알았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이다. 그래서 고위공직자가 사사로운 청탁전화를 하면서 직함을 밝히겠느냐는 부정론에 설득력이 있는 것같다.
D대학 수석입학 사실과 4년간 성적표 사본까지 공개했다는 그가 거짓말을 했겠느냐는 반론도 그럴싸 하다.
■ 그 말의 진실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원칙대로 업무를 처리하려던 강직한 직장인이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고 도피생활을 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권부의 청탁을 거절한 데 대한 보복으로 사직동팀이 그를 불러 비리를 자백하라고 윽박지른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수배를 해제하고 원직에 복직시키는 것이 합당하다. 그가 공직자이므로 수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직동팀에 부여된 임무는 그게 아니다.
■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은행의 불법·부당대출이 지나간 시대와 조금도 다름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빛은행은 관악지점이 아크월드 등 기업에 부당대출한 돈이 모두 580억원이라고 밝혔다. 대출경위는 수사가 끝나야 알겠지만 정당한 절차와 경로를 밟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7월 금융노조 파업 당시 관치금융 철폐를 요구하는 노조측에 정부는 “구시대적인 관치금융은 결코 없다”고 큰소리 쳤었다. 인권국가와 경제정의를 지향한다는 한국의 시계는 지금 몇시인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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