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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누구를 위한 총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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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누구를 위한 총구인가

입력
2000.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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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마오쩌뚱이 한 말이었던가? 그러고 보니 ‘총구’라는 말에도 입구(口)자가 들어 있군.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무엇인지 정의해볼까?한쪽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쪽은 그 권력을 뺏으려고 입으로 총질하는 사람들? 국민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도덕의 이름으로. 나도 이판에 입총질 한번 해보자.

요즈음 정치판을 보면 조선왕조 시대 당파싸움은 저리가라다. 동인 서인 노론 소론 과거 붕당정치를 주름잡던 사람들도 얼굴을 돌릴 판이다.

어찌된 셈인지 멀쩡하던 사람들도 정당판에만 끼어들면 딴 사람이 되어버린다. 과거에 노동운동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 자본가를 두둔하는 데 경황이 없는가 하면 진보의 기수라고 자처하던 사람이 왕보수로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 현상도 비일비재다.

독재권력에 빌붙고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민주투사로 변신하여 말끝마다 독재 독재 하면서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도 꼴불견이고 권력맛에 도취되어 과거 정권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구구히 변명을 늘어놓는 행태도 목불인견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래도 지난날에는 할 말이 있었다. 과거 독재정권의 권력은 진짜 총구에서 나왔다. 총잡이들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제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 총을 쥐어주기도 하고 총부리를 들이대기도 해서 권력의 울타리를 둘렀다.

국민에게 탓이 있다면 총부리가 가리키는 길로 목매인 송아지처럼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데에 있겠지.

지금은 아니다. 비록 지역감정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득실에서, 당파심이나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총구에 떠밀려 ‘선량’들을 뽑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뽑은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고 국민 전체의 탓이다. 탓을 돌릴 데가 없다. 시절도 많이 좋아졌다. 중앙정보부와 국기안전기획부가 공포정치의 파수꾼 노릇을 하던 때도 지나갔다. 떳떳한 국민치고 누가 국가정보원을 두려워하랴.

남북의 대치상태를 빌미삼아 걸핏하면 국민들을 협박하던 ‘앞으로 몇년이 위기’라는 낡은 구호도 약발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과거의 망령들이 아직도 국민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이 망령들이 아직 여전히 사람 탈을 쓰고 정치판 경제판 언론판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눈 어두운 사람들은 마치 그 망령들이 실제로 나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망령들은 실체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깔려 있는 어둠을 이용하여 이 망령들이 우리의 의식을 가위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제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다.

국민의 의식 속에 두려움을 불어넣거나 되살려 기득권을 지키려하거나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하려는 무리들이 있다면 가차없이 가면을 벗겨내야 할 때다. 온 나라를 뒤덮은 것같은 검은 망또 위로 해맑은 햇살 한줄기 비치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그 그늘밑에 강아지들이 낑낑거라거나 생쥐새끼들이 찍찍거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어둠의 세력들은 언론을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다. 식민지 시절을 뺀다 하더라도 지난 50년동안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언론의 망령들이 이 보루를 사수하고 있다.

얼핏 보면 성채처럼 완강해보이는 이 보루도 실제로는 낡은 휘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훌륭한 사슴가죽 노릇을 하고 있다.

그 위에 ‘날일자(日)’를 쓰면 옆으로 잡아늘여 ‘가로왈자(曰)’로 만드는 이른바 ‘녹피에 가로왈’을 조작하는 언론의 대가들을 몰아내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서 인쇄할 수 있도록 하자.

언론을 조작하려는 자는 반드시 언론에 조작당한다.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해서 여론을 조작하려는 자는 반드시 여론에 조작당한다.

/윤구병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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