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 아니라 생태계의 보고(寶庫)이자 엄청난 자연의 혜택을 주는 소중한 터전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한국일보가 ‘갯벌을 살리자’ 기획특집을 시작한 이후 받은 수많은 격려들이 이같은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주민들의 개발욕구는 도외시한 채 환경논리만 내세워 간척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켰다는 항의도 있었다.
특집을 마무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 추진여부에 대한 결정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전문가들로부터 갯벌의 가치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사회=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갯벌의 25%(810㎢)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의 하나인데 해마다 감소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간척사업을 국토확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갯벌을 농지나 공단 등으로 토지이용 형태를 바꾸는 것에 불과합니다.
1970년대에 근대화와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잘못된 개발에 대한 신념으로 갯벌을 마구 매립해왔습니다.
국토를 그냥놔두면 ‘불경죄’라도 되는냥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을 ‘개발’이라고 여겼지요. 간척사업에 대해서부터 말문을 열어봅시다.
▲고철환 교수= 간척사업은 자연에 대한 인식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느냐로 가치를 따집니다.
그러나 자연은 있는 그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와서야 갯벌에 대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이를 돈으로 평가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한경구 교수= 바다를 메우는 일이 굉장히 멋있는 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요. 장엄한 대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뿌듯해 했어요.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지요. 자연에 대한 그릇된 생각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정치적·계층적 이해관계가 갯벌을 죽여왔습니다.
▲김영규 과장= 개발도상국은 개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간에 환경파괴를 초래했던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갯벌을 개발하겠다는 수요는 아직 많습니다. 따라서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보다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양장일 국장= 간척사업은 매년 3만㏊씩 육지에서 이런 저런 용도로 사라지고 있는 농지를 갯벌을 메워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간척사업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육지의 농지는 계속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갯벌을 매립해 농지를 만들면 되니까요.
그러나 김포와 서산매립지의 예처럼 농지로 조성한 간척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있습니다. 농지를 확보하려는 갯벌 매립정책이 실패한 단적인 사례입니다.
수도권의 난개발을 중단하면 농지 75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25개를 벌이지 않아도 될 정도지요.
▲사회= 양국장 말씀대로 정부가 식량안보를 외치면서 기존의 농지를 마구 훼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해야 갯벌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있을까요?
▲고 교수= 개발론자들은 갯벌을 없애고 농지로 변경하는 것을 ‘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는 것 자체로도 ‘이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갯벌에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매우 독특한 자연현상과 희귀한 생태계, 철새 등 관찰대상이 무궁무진합니다. 사람들이 갯벌에 접근하면서 갯벌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 교수= 갯벌을 자유재(공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개발로 인한 경제성보다도 환경문제를 포함해 지불해야할 비용이 더 많은데도 개발을 멈추지 않는 것은 개발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익만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개발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소수지만, 비용은 불특정다수인 국민들이 수세대에 걸쳐 장기간 부담해야 하니까요.
▲양 국장= 환경친화적인 개념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자 마지막 피신처이므로 그 가치가 인정돼야 합니다.
▲김 과장= 갯벌이 농지보다 경제적 가치가 많다는 분석도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매립이나 간척보다 갯벌의 효용성이 크다면 당연히 보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염이 심해 제기능을 상실한 갯벌은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남 함평만을 시작으로 전국의 갯벌 생태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2004년까지 조사를 마무리해 보호구역 지정 등 체계적인 보존·개발대책을 수립할 것입니다.
▲사회= 많은 의견이 나온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것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교수= 경제성 평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10개 시나리오 모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지만 환경가치에 대한 판단이 너무 주관적입니다.
갯벌매립으로 환경이 파괴되었을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 데, 미래의 위험을 어떻게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까?
▲고 교수= 새만금사업을 지금 중단해도 얼마든지 대안이 있습니다. 정부가 중단키로 결정만 하면 대안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환경단체에서도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선 정부가 대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찬반으로만 몰고가는 정책결정방식부터가 한심한 것입니다. 기존 방조제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둑을 쌓으면 갯벌을 죽이게 됩니다. 갯벌을 살리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양 국장= 정부가 민·관공동조사단의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업의 계속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해놓고 조사단을 ‘원격조정’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민간위원들이 합의하지 않았는 데도, 조사단장의 개인의견이 종합의견으로 둔갑하고, 총리실이 압력을 가한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조사단에 참여했던 민간위원들이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새만금 문제는 이제 총리실이나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에 맡기기 곤란해졌습니다. 대통령직속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김 과장= 정부 관계자의 한 사람으로 무어라 의견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수부와 환경부는 민·관공동조사단에 참여했던 9개 정부기관 가운데 유보입장이었다는 점만 밝힙니다.
▲한 교수= 정부가 새만금 사업계속 여부를 서둘러 결론내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민·관공동조사단은 공사의 계속여부만 검토하는 바람에 대안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기본자료가 충분히 축적된 만큼 공사를 중단한다면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다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장시간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새만금은 갯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된 것같습니다.
● 좌담회 참가자
사회 노융희(盧隆熙) 서울대 명예교수
토론 고철환(高哲煥) 서울대 해양학과 교수
김영규(金永奎) 해양수산부 해양보전과장
한경구(韓敬九) 국민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양장일(楊將一) 환경운동연합 조사국장
정리=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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