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속 소시민의 삶 80인생 고갱이만 모았죠""수필답지 않은 글을 함부로 쓰는 것이 잘못임을 깨달은 것이 70 고개를 바라볼 무렵이었습니다.
한 50년 동안 썼던 글들 중에서 뽑아 버리고 잘라내고 남은 것들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더러는 굵은 가지도 미련 없이 잘라 버렸습니다."
원로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태길(80 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수필집 '초대'(샘터 발행)를 냈다. 1950년대부터 올해 쓴 것까지 미발표작 40편을 묶었다.
인생 경험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단상이 단아한 문장에 담겼다.
수필집은 1965년부터 20년 동안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한 학자의 글이라기보다는, 빠듯한 살림에 매일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글처럼 읽힌다.
법정에서 법복을 입은 판사들을 보면서는 자신이 삼등인생이라고 느꼈고, 노년에 접어든 자신을 보면서는 회한에 젖기도 했다. 아들을 기다리다 딸 셋을 연이어 낳았을 때의 절망감도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독재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지식인의 고뇌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일동 기립"이라는 호령으로 대통령의 입장을 알린 1960년대 서울대 졸업식 풍경, 학생시위를 보면서 현실 참여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던 심정 등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수필집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한국 현대사로도 읽힌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 행태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돈 벌려고 정치하고, 권력 행세하려고 정치하고. 그러다 보니 정치나 경제 모두 위태로워 보입니다.
요즘 정치인이나 기업인 모두 도덕적으로 너무 해이해져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
여든을 넘긴 고령임에도 김 교수는 돋보기 없이 손바닥만한 수첩 속의 깨알 같은 글씨를 거뜬히 읽는다.
지금도 매주 한번씩 테니스를 즐긴다. 1987년 개설한 서울 방배동의 철학문화연구소에는 매일 출근하며 계간지 '철학과 현실'을 내고 있다.
"요즘 너무나 많은 수필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질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염치없이 미화하고 추켜세운 글은 천박한 붓장난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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