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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내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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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내한 강연

입력
2000.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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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스티븐 호킹(58ㆍ캠브리지대 석좌교수) 박사가 천체물리 국제학술회의인 '코스모 2000'(4~8일 제주 KAL호텔) 참석차 내한, 31일 청와대와 고등과학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루게릭병의 장애를 가진 그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무릅쓰고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 시도해야 하며 곧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햄릿의 말을 빌려 '호두껍질 속의 우주'라는 제목을 붙인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20세기 물리, 천문학자들의 우주의 기원과 진화 탐구를 개괄했다. 호킹 박사에 따르면 인간은 호두껍질 속에서 우주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 강연 이모저모

1990년에 이어 10년 만에 방한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워낙 유명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전신이 마비된 루게릭병을 앓고 있어 방한에 어려움이 컸다. 3명의 전담 간호사와 비서가 수행하고 거동과 강연에 필요한 장비도 많아 "한번 움직이는 데 1억원이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호킹 박사를 초청한 고등과학원과 서울대측은 휠체어로 움직이는 그를 위해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에서 앰뷸런스를 대여해 내부를 완전히 개조했다.

호킹 박사는 손가락 한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 폐렴으로 기관지 수술을 받은 후 목소리조차 잃어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러 음성합성기로 소리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한번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 5~10분은 걸린다

■김대통령과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웃사촌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웃 사촌’이다. 김대통령은 15대 대선에서 패배한 후 93년 영국으로 갔을 때 거처인 캠브리지시 오스트하우스의 옆집에 살고 있던 호킹 박사와 깊은 교분을 맺었다.

김대통령은 호킹 박사를 가끔 초대해 식사를 했으며 우주론 등에 대해 많은 토론을 나눴다.

김대통령과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이후 장애인들을 만날 때면 호킹 박사의 예를 들면서 “신체의 장애는 의지와 정신을 꺽을 수 없다”고 격려하곤 했다.

호킹 박사는 31일 청와대에서 강연하기 전 김대통령을 예방했다.

이영성기자

■"우리는 무한한 공간의 왕…우주도 곧 완벽히 이해 가능"

살아있음이 가장 큰 업적

제 자신과 저의 업적,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왔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저의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1963년 저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ㆍ일명 루 게릭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내지 3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게릭 진단을 받기 전까지 저는 삶이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때이른 죽음을 직면하자 저는 놀라울 만큼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삶이란 좋은 것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병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천천히 악화했고 다행히 제 최고의 관심사인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별로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리학 이외에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었느냐구요?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장난 삼아 정치 지도자가 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한국의 대통령은 될 수 없었겠지만 영국의 총리는 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총리 자리를 토니 블레어님께 넘기기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 분보다는 제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 일이 역사에 더 오래 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한한 우주,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가의 문제로 돌아갑시다. 햄릿은 "우리는 호두껍질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물리적으로는 매우 많은 제약을 받고 있지만 (특히 제 경우는)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우주 전체를 탐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겠죠.

우주는 과연 무한히 넓을까요, 아니면 매우 크긴 하지만 유한할까요? 또 우주는 영원히 계속될까요, 아니면 시작과 끝이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무한한 우주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런 시도를 하는 것조차 너무 건방진 일이 아닐까요? 신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무릅쓰고 저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우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직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주공간의 성질 중 가장 분명한 것은,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은하들은 우주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우주의 모양은 우주공간 어디서나 모양이 비슷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명히 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초의 일입니다.

우주가 무한히 변하지 않는다면 무한히 긴 시간 동안 별들이 빛과 열을 방출해 벌써 우주 전체가 별들만큼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또한 한밤중에도 하늘 전체가 태양만큼 밝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는 별들이 유한한 시간 전부터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로부터 나온 빛은 우리에게 도달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되지요. 그래서 온 밤하늘이 빛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왜 몇십억년 전에 별들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칸트와 같이 우주가 영원히 존재했다고 믿은 철학자들은 이 문제로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놀라운 발견 '빅뱅'

1920년대 윌슨산에 있는 100인치 망원경에 의한 관측 결과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매우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은하들이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20세기의 가장 심오한 지적 혁명 중 하나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발견이었으며 우주의 기원에 대한 모든 논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면, 과거에는 그들이 지금보다 더 가까이 있었어야만 합니다.

은하가 서로 가까워지다가 충돌하지 않고 비껴 지나면서 다시 멀어지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에 시초가 없었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리프쉬츠와 칼라트니코프가 제안했는데 우주의 창조라는 곤란한 질문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겠죠.

로저 펜로즈와 저는 몇 가지 기하학적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몇가지 조건이 맞다면 우주는 시초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리프쉬츠와 칼라트니코프도 결국 동의했습니다. 비록 공산주의의 관점에서는 그리 내키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물리학 안에서는 이데올로기가 결코 과학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물리학은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했고 폭탄이 잘 작동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우주에 시작점이 있고 최초의 사건이 있었다. 무엇이 그 최초의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로저 펜로즈와 나의 정리에 의하면 우주는 어떤 대폭발점(Big Bang)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점에서는 우주와 모든 것들이 무한대의 밀도로 응축돼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상대론을 가지고는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대단한 도박사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운(chance)에 따라 결정된다는 아이디어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그의 한 마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증거들에 의하면 신은 대단한 도박사입니다. 우주는 항상 주사위가 날아다니고 룰렛이 돌아가는 거대한 카지노인 것입니다.

카지노에서 돈을 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단 서너 번의 게임에 거는 것입니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가 클 때에는 주사위가 매우 많이 던져지게 되고 평균적으로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빅뱅 직후처럼 우주가 아주 작을 때에는 주사위가 적은 횟수만 던져지게 되고 불확정성 원리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불확정성 원리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안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이론 물리학의 큰 난제였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그 해답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계속 주사위를 굴리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우주의 역사는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주의 역사가 여러 갈래라는 아이디어는 공상과학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파인만(Feynman)의 아이디어입니다.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과 파인만의 다중 역사 아이디어를 합해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기술하는 완전한 통일이론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진화해 갈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주의 경계, 시공간의 끝에서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가르쳐 주는 소위 경계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있는 하틀과 나는 세번째의 가능성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우주는 시공간 상에 아무런 경계를 갖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허수시간' 이라는 다른 종류의 시간에 의해 우주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이는 실제시간으로 본 역사와 매우 다릅니다. 허수시간을 따라가는 우주의 역사는 시작도 끝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허수시간은 마치 또 하나의 공간 방향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우주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다는 말이 됩니다.

■'빅크런치' 200억년후

지적 생명체가 나타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많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물질에 양에 좌우됩니다. 만약에 물질의 양이 어떤 임계질량보다 많다면, 은하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팽창의 속도를 늦추고 마침내는 서로 떨어져 날아가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은하들은 서로 잡아당겨 가까워지고 우주역사의 종말인 빅 크런치(Big Crunch) 에 이르게 됩니다. 이 나라(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미래의 200억년 후 있을지 모를 종말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 같지 않군요. 여러분은 2백억년 동안 충분히 많이 먹고 마시고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만약 우주의 밀도가 임계값보다 작다면, 중력은 너무 약해서 은하들이 영원히 서로 멀어져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모든 별들이 다 타버려서 없어지고 우주는 점점 더 차가워져 다시 종말을 고하게 되지만, 앞의 경우보다 덜 드라마틱하고 여전히 수십억년은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광활한 우주의 움직임이 허수 시간으로 본 우주역사를 통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그리고 조금 평평해진 구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강의를 시작할 때 썼던 호두껍질과 거의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호두는 실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햄릿은 결국 옳았습니다.우리는 호두껍질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을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리=김희원기자 hee@hk.co.kr

■스티븐 호킹은 누구인가

근육 수축 루게릭병 캠브리지대 석좌교수

우주의 비밀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휠체어 위의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58) 교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노벨상을 받지 않은 과학자 가운데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물도 드물다. 호킹 교수는 1942년 영국 옥스포드에서 출생해 62년 옥스퍼드대를 3년 만에 마치고 20세에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조정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건강했던 그는 63년 근육이 점점 수축되는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의 학문인생은 그 때부터 본격화했다. 특이점 정리, 블랙홀의 증발, 양자중력론 등 현대물리학의 흐름을 바꿔 놓는 혁명적인 이론을 잇따라 내놓았다. 74년 사상 최연소 영국왕립학회 회원이 됐고 80년부터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그가 일반인들을 위해 우주의 역사와 시공간 개념을 쉽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는 88년 출간 후 40여개국에서 1,000만권 이상 팔렸다. 그는 65년 여대생 제인 와일드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으나, 95년 이혼하고 자신을 돌봐주던 간호사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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