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법정관리인들마다 구(舊)경영진의 ‘흠집내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서울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31일 현재 법정관리 중인 기업은 서울 72개사를 포함해 전국에 140여개사. 법원에서 기업 소생 역할을 맡긴 이들 회사의 법정관리인들은 과감한 구조조정 등 ‘악역’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 이 와중에서 이들 중 상당수가 전 경영진측에서 법원, 검찰 등 관계요로에 보내는 비방성 제보 및 진정·탄원서 등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A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9월 파견된 법정관리인이 회사소유 건물의 임대료를 인상하고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납품대금을 줄이는 등의 비용절감 조치를 취하면서 전 경영인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심지어 특정종교 계통의 회사에 다른 종교의 관리인이 올 수 없다는 이유까지 들어 법원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종교문제는 부차적인 것일 뿐,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구 경영진의 입김이 반영된 것”이라며 “실제로 건물 임대인이나 하청회사들 상당수가 구 경영진측과 친분있는 관계자이거나 커미션 등으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B사의 임원진 및 간부사원들은 얼마전 구 사주(社主)측의 요구에 의해 “신임 관리인의 경영정상화 노력이 부족하고,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법원에 접수시켰다. 이 회사는 관리인이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되는 현상까지 벌어질 정도로 구사주측 입김이 강해 법원이 구사주측 사장을 사임시키기도 했다.
C사의 관리인도 최근 “유능한 임원을 퇴임시키려 한다”는 모(母)기업측의 진정서로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특히 하청비리가 만연한 건설회사의 경우 법정관리인이 비용절감 측면에서 기존 거래선을 정리하는 사례가 많아 유난히 다툼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 사주의 간접 간여에 따른 주식지분 변동과 임원들의 저항으로 10개 계열법인의 경영권 지배가 불가능했던 D건설업체의 경우 최근에야 소송을 통해 법정관리인이 간신히 경영권 확보에 성공했다.
올해 4월 브로커가 법정관리 중인 나산의 정리채권 16억원의 우선변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아 문제가 됐던 사건도 원래 이 회사 채권단이 이 브로커의 배후로 법정관리인을 지목해 검찰에 투서해 표면화했던 것. 그러나 수사결과 관리인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동아건설의 10억원대 정치자금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노조가 즉각 최원석(崔元錫) 전 회장의 복귀를 요청한 것만 봐도 구 사주측의 경영주도권 회복노력이 얼마나 치열한지 가늠할 수 있다”며 “‘법정관리인 흔들기’는 회사를 망친 구 경영진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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