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떠돌던 일부 부실 기업주들의 불법행위들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회사 보유 부동산을 헐값에 매도하고 뒤로 차액을 챙기는 방법이다.본인 소유 토지를 계열사에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매각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해외 자회사를 이용, 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은 고전적인 수법중 하나이다. 이런 불법행위들이 부실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가운데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들은 국민 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 정상화에 발목을 잡고있는 금융부문의 부실도 실상은 기업 부실이 누적된 결과이다.
금융부문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태까지 쏟아부은 공적자금 64조원도 부족해 앞으로도 30조원 가량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100조원이면 4인 가족 한가구당 1,000만원 씩이다.
국민들은 혈세로 이같은 돈을 부담하는데 일부 부실 기업주들은 뒤에서 불법적으로 잇속이나 챙기니 분통할 노릇이다. 정부에서는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조로 부실 기업주들의 불법행위를 낱낱이 밝혀내 처벌하겠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초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김대중 대통령은 그 당시 부실기업 문제에 대해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업주들의 불법행위가 줄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적 조사에 따르면 우리 기업주들의 불법행위는 선진국이나 우리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중진국에 비해 훨씬 심하다고 한다.
그러면 사정당국에 의한 간헐적인 엄중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을 들 수 있다.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은 이런 행위에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일반 개인 사업자들도 부동산 취득시 자기 명의가 아닌 부인 등 타인 명의로 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 돼 있다. 만일의 경우 일어날 부도에 대비한 사전 조치이다. 곧이 곧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무능력자 취급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언론이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를 들먹여 봐야 사회의 도덕성이 단기간에 회복될 리 없다. 당근이든, 채찍이든 동기유인이 있어야 도덕성 회복도 가능하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경영한 기업가라도 일단 파산하면 최소한 6가지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금융, 노동, 토지이용, 안전 등과 관련된 법을 조금이라도 위반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기업 현실이다.
새로운 경제팀에서는 내년 2월까지 금융 기업 공공 노동의 4대 부문 개혁을 완료, 우리 경제의 시장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들 개혁이 없이는 우리 경제의 도약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가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기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것은 아직도 많다. 정부는 규제를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규제개혁 속도는 너무 늦다.
일단 법과 제도가 완비되면 위반자는 지속적으로 단속해야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단속을 강화하면 범죄자를 양산, 정상적인 경제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단속과 처벌이 일과성으로 이뤄지면 처벌받는 기업주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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