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월의 마지막 날이다. 공직에서 정년퇴직한 뒤 서울로 올라와 일한 지도 2년이 가까워온다. 아직은 미미한 여력이나마 일할 수 있고, 집을 떠나 숙식이 불편하더라도 매주 한번꼴로 번갈아 자식들 안부전화가 걸려와 즐거움 속에 살고있다.오늘 아침 전주의 며느리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 “아버님, 애비 대신 전화했어요. 건강하시고요? 명학이와 규진이 잘 키우는 부모가 될게요.”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약속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뜻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나름대로 느낀 것이 있었다.
실은 아내의 쉰아홉번째 생일 외식을 군산의 한 보호시설에서 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에서 오래전부터 후원해온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 외식비면 80여명이 먹을 수 있으니 그곳에서 했으면 하는 아내 제의로 이뤄졌다.
그날 우리 내외는 질좋은 돼지고기 목살 40근과 상추 한 상자를, 전주 아들은 수박을 각각 준비해와 보호시설에서 저녁시간을 가졌다.
보호시설에 도착하니 원장 부인이 보채고 우는 세살된 여자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한 미혼모가 낳은 여자아이를 아이의 할머니가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얼마전 맡기고 간 것이다. 그 아이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녁 6시 우리 내외, 아들 내외, 딸 내외가 참석, 생일 나눔을 시작했다. 음식 둔 곳으로 바삐 오가며 볼이 터져라 먹는 모습이나 밝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담은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세살된 그 여아도 보육교사의 옆에서 수박을 맛있게 먹었다. 기분좋은 날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며느리는 “어머님, 오늘 많이 느꼈어요. 우리 아이들 잘 키우고 보호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딸도 미혼모의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려 눈물을 닦았다.
오늘 며느리의 전화에서 그날의 얘기와 함께 아이를 잘키우겠다는 다짐을 들으며 아내의 생일 잔치가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주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김병권 서울 금천구 가산동
※독자에세이에 원고가 실린 분께는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