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기정점 논란이 대두되더니 이제는 경기가 급강하하는 경(輕)착륙 의 가능성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위기 신호를 감지하면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경험칙으로부터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문제를 차분히, 그러면서도 우선 순위를 따져가면서 단호히 대처해나가야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지금 신용경색으로 기업의 자금줄은 막혀있고 주가 폭락으로 자금경색이 가중되고 있으며 내수도 냉각되고 있다.
환율은 경쟁국보다 훨씬 절상돼 수출이 여의치않고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제수지 흑자규모도 격감하고 있다. 정부는 남북경협이라는 풍선을 열심히 띄우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이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남북경협은 최장기적으로 최고의 호재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단기적으로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이나 국민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에 국내외 전문가들은 일관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기 좋은 말로 구조조정이지 구조조정에도 종류가 많고, 우선 순위가 다르고, 걸리는 시간도 다른데 우선 순위별로 무슨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찾아 보기 힘들다. 전 분야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하라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4대 개혁 과제’라는 커다란 그림을 그려 놓고 밤낮 회의만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큰 그림에 매달릴 시간이 없을만큼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원인 분석을 하고 누구 탓을 할 시간도 없다. 투신권에 공적자금을 5조원이나 투입하고 비과세 상품을 내놓아도 해결의 실마리가 안보이는 것을 보면 지금이야말로 어떤 단안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상황에서 볼 때 정부는 시급히 해결의 접근 방식을 선택해야한다. 우선 일도양단의 원칙하에 단칼에 해결하는 방식 즉 급냉의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는 외환위기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에게 요구한 방식이다. 성장률이 얼마가 되든 구조조정을 동시에, 전분야에 걸쳐, 강도 높게 실시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통의 혜택이 따르게 마련이다.
두번째로는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는 우선 급한 불을 끄는데는 효과가 있겠지만 훗날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장단점은 있다. 고도의 주관적 판단이 요구된다. 이중 첫번째 방식은 이미 한번 했기 때문에 다시 택할 경우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책의 수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깜짝 놀라게하는 방식은 한번만 유효하지 자주 쓰면 효과가 반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두번째 방식이 해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두번째 해법 가운데는 무엇이 최우선인가. 지금은 정부를 비롯해 투신권 등 모든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어떤 새로운 제도 또는 정책을 제시해도 믿질 않는다.
제도 개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현재로서는 그럴 시간도 없다. 따라서 직접 주사요법을 쓸 수 밖에 없다.
이른 시간안에 공적자금을 조성, 투입하고 인수·합병(M&A)을 유도해야 한다. 제일은행처럼 약발이 안들 위험은 있다. 즉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동시에 후세에 부담을 지우는 형평성의 문제도 안게 된다.
대단히 안타까운 상황임에 틀림없다. 정치적으로도 ‘공적자금정권’이라는 오명을 쓰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달리 묘수가 없다.
/한성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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