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고집불통으로 소문난 감독이다.그의 유족들 역시 고집이 세긴 마찬가지여서 한국 개봉을 위해 몇 장면 삭제해야 한다고 하자 "단 한 컷도 손댈 수 없다" 며 완강하게 맞섰다.그렇게 해서는 한국에선 영원히 개봉할 수 없다고 설득해 겨우 두 장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9월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의 영화는 늘 개봉전 말이 많았다. 큐브릭 감독은 '스크린의 마지막 군주' 로 불린다. 군주도 죽을 때가 되면 인간의 본성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일까. 그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눈을 질끈 감다' 는 뜻)은 위장된 인간 내면에 숨은 치열한 욕망에 눈을 부릅뜬 영화이다.
^제작과정에도 화제가 만발했다. 당초 제작비를 50%나 늘린 6,500만달러의 엄청난 제작비는 물론이고, 전세기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 명성의 톰 크루즈와 아내 니컬 키드먼을 적은 출연료에 300일간이나 촬영장에 잡아 두었고, 연기파 배우 하비 키이텔을 단박에 해고하고 감독 시드니 폴락에게 배역을 주었다.
얼핏 '아이즈 와이드 셧' 은 요란스런 감독의 괴벽만큼이나 별스러워 보인다. 난교(亂交), 여성의 전라 장면 등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많지만 광시곡보다는 장엄 미사곡에 가까워 보인다.
큐브릭 감독이 1960년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는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트르 슈니츨러의 소설 '랩소디: 꿈의 소설' (1926년작)은 제임스 조이스의 몽환적 소설처럼 전개되는데 반해 영화는 미스터리 드라마와 같은 호흡이다.
단 하룻밤만 그와 지낼 수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부자들의 주치의로 성공을 거둔 빌 하퍼드(톰 크루즈)는 아내 앨리스(니컬 키드먼)에게서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전날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재한 지글러(시드니 폴락)로부터 유혹에 자극받은 듯 아내는 지난 여름 휴가에서 마주친 해군장교에게 느낀 성적 충동을 고백한다.
사망한 고객을 문상하고 그는 집으로 가는 대신 거리를 방황한다. 창녀와의 만남 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의대동창인 한 클럽의 피아니스트인 닉과의 만남이다.
그를 통해 부자들의 나체 파티 소식을 접한 그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토를 두르고 가면을 쓴 채 위험한 파티에 참석한다.
큐브릭은 섹스 파티장을 장엄한 밀교의식처럼 묘사함으로서 인간의 의식에 숨어있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의 크기를 더욱 부풀린다.
파티를 다녀온 후 빌은 신분이 들통난 자신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미지의 여성과 그들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머리 속 한편에는 아내와 해군장교와의 정사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큐브릭은 성적 일탈에 대한 욕구와 그에 따른 살인 사건에 휘말린 '본능적 빌' 과 아내의 고백으로부터 충격을 받고 그의 정절을 의심하는 '남편 빌' 의 모습을 병치함으로써 통제불가능한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을 가두려는 또 다른 집착을 드러낸다.
큐브릭은 그러나 어떤 욕망의 편도 들지 않는다. 욕망은 안전하거나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듯 하다.
후반작업이 까다로운 감독이 1차 편집 후 사망했기 때문인지 편집이 다소 밋밋해 보이나 '투 다이 포' 에서 보다 더 관능적인 니컬 키드먼의 몸매와 눈빛 때문에 감각적 느낌은 더 강하다.
오락성 ★★★★ 작품성 ★★★★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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