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엄청난 힘이자 한편으로는 큰 고통이기도 하다.도덕이란 덫을 자유로이 빠져나가 마음껏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투명인간’은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가.
플라톤은 “도덕성이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기대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고 말했다.
또 “투명인간은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힘을 남용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미국 과학자 카인(케빈 베이컨)은 투명인간이 된다. 구약성서에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그는 탐욕과 질투로 가득 찬 인간이다.
투명인간 연구의 최고 실력자로 그는 ‘성공이 모든 면죄부’라고 생각하고, 그 성공으로 자신을 멀리하는 동료 린다(엘리자베스 슈)의 사랑도 차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실험대상이 돼 투명인간으로 변한다. 그러나 성급한 실험으로 그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할로우 맨 (Hollow Man)’은 ‘투명인간’의 쾌락과 공포에 관한 상상이다. ‘토탈리콜’‘스타쉽 트루퍼스’의 덴마크 출신 폴 베호벤 감독은 철학적이거나 심리적이지 않다.
흥행 감독답게 그는 SF적 상상력을 대중적 기호로 풀어간다. ‘투명인간’으로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욕망은 관음증의 제한없는 충족이다.
카인은 남의 집에 들어가 여자를 겁탈하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동료 린다 (엘리자베스 슈)의 침실을 엿보거나 그의 몸을 더듬는다.
보이지 않는 카인의 시선을 대신하는 카메라는 곧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인이 자기 실체를 가지지 못하는 절망에서 오는 악마성을 드러낼 때 쾌락적 시선은 공포로 바뀐다.
카인이 연구원들을 모두 죽이고 영원히 사악한‘투명인간’으로 살려할 때, 린다는 물론 관객들 역시 그를 ‘신의 섭리를 어긴 위험한 자,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냉정하게 규정한다.
그 규정에 따라 투명인간과 여전사가 된 린다는 뻔하지만 처절하게 결투를 벌인다.
‘할로우 맨’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시각적이다. 그것은 투명인간에 대한 다양한 표현방식 때문이다.
투명인간의 움직임은 실제 배우가 연기를 한 후 컴퓨터로 배우의 모습만을 지우는 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3차원 디지털 컴퓨터 그래픽이 연출한 피부에서 근육을 거쳐 내장까지 서서히 없어지며 투명인간이 되는 카인의 모습도 놀랄만큼 사실적이다. 오락성★★★★ 예술성★★★. 2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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