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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러시아적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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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러시아적 리더십

입력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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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발생하는 잇단 대형사고는 이 나라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118명의 승무원이 몰살한 핵잠수함 침몰이나 엊그제 모스크바의 오스탄키노 방송탑 화재가 모두 최악의 국가위신 추락을 상징한다. 두 사고는 바다 속과 공중에서 별개로 일어났지만 여기서 러시아가 겪고 있는 구조적 혼란과 문제를 똑같이 볼 수 있다.이 사고들은 국가의 중추적 관리기능, 위기관리 능력, 사회기간시설 유지수준 등의 치부를 심각히 드러냈고, 이를 두고 러시아의 국가기간망의 붕괴를 걱정하는 시각이 무성하다.

몇 년 전 우리의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정신적, 물질적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여겨졌던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 자각들은 얼마 뒤 IMF경제위기로 현실화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러시아의 이런 문제들이 구소련 해체이후 경제력의 몰락과 직결돼 있음은 물론이다. 기간시설이나 조직의 정상유지 운영, 안전관리에 충분한 지출을 할 수 없는 열악한 국가재정이 직접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구소련을 해체시킨 체제질병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결과이다. 새로운 러시아로 출발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옛 체제의 몰락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픈 현실인 셈이다.

이 현실이 아프다고 하는 것은 러시아의 신체제가 서방 자본주의의 ‘교육’과 ‘지도’, 그리고 대규모 경제지원에 힘입어 가동됐음에도 불구하고 모순과 불만, 체제불안은 계속 누적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 쯤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번에 그들에겐 더 깊은 상처가 생겼다.

구체제가 남긴, 더 심각한 ‘부(負)의 유산’을 쿠르스크호 침몰사건을 통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불과 100일여 전 압도적 지지로 당선시켜 주었던 대통령이 참극 속에서도 휴가를 가지고, 정부와 군은 거짓말로 사태를 감추고, 어린 수병들의 목숨이 달린 극한상황에도 ‘선진’외국의 구조지원을 거부하는 비정함을 생생하게 보게 됐다.

‘강한 러시아’에 지지를 보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서 러시아 국민들이 본 것은 위기상황에 반드시 있어야 할 리더십의 실종이었다. 이것이 푸틴식의 리더십이라면 그건 ‘비정한 리더십’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사고발생 초기 사고전말과 승무원들의 사망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혹은 지금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기관리 상의 실수이든, 의도를 가진 조작이든 푸틴과 군의 대처에서 적나라한 것은 차르시대와 소련체제에 걸쳐 익숙하게 봐 왔던 비밀주의, 인명경시, 통제와 조작, 국가의 권리인양 당연시 돼 온 국민기만 행태의 망령이었다.

푸틴은 사고 열흘이 훨씬 지나서야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지만 정말로 인간적인 비통함을 느끼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난 100일 동안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라면 내가 지겠지만 지난 15년 간에 대해서라면 그들의 책임”이라고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며칠 뒤 그는 더 당당했다. 푸틴은 언론이 오도와 과장으로 대정부 공격에만 몰두했다고 비난하면서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올리가르히의 척결을 다시 거론했다.

국면전환이든 정면돌파이든, 이 대목에서 서방언론들은 올리가르히에 관한 한 대다수 국민은 공감하고 있다고 썼다. 러시아의 혼돈은 바로 이런 것이다.

푸틴은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정계등장 이후 수백 장의 외신사진을 봐 왔지만 그가 희미하게나마 웃는 표정을 지은 것은 측근들과 함께 대통령선거 승리를 확인하던 때 정도였을 뿐이다.

정보활동 시절의 습속이 몸 깊이 배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그에게 ‘대중정치’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바로 대중정치가 키워내기 때문이다.

조재용 국제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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