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가 과연 논평의 대상이 될만 한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색을 하고 한국정치를 비판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불행이다.4.13총선 선거비용 실사(實査)에 민주당이 개입했다는 논란과 그로 인한 여야 대치로 다시 정국이 마비됐다. 한나라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정기국회도 보이콧하겠다는 강경자세이고, 민주당은 ‘사실무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윤철상 발언’을 ‘실언’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입장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 사무부총장이던 그는 지난 25일 비공개로 진행된 민주당 의총에서 “실사정보를 미리 알아내 당에서 대책을 세웠으며 기소돼야 하지만 기소안된 사람이 10명을 넘는다”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선전후 지구당 사무원등을 불러 교육하면서 법정선거비용의 50%이상을 신고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한 의원들이 당차원의 대책이 없다고 항의하자 윤철상 사무부총장이 그들을 무마하려고 과장된 발언을 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해명이다.
그 해명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의 말이 과장됐을지는 몰라도 사실무근일수는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4.13총선에 나섰던 사람들은 낙선자나 당선자나 예외없이 “법정선거비용으로 선거를 치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선거비용을 제대로 조사한다면 안 걸릴 사람이 거의 없을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 차원에서 선거비용 신고요령을 어떤 식으로든 교육시키지 않을수 없고, 자기당 당선자가 고발되거나 기소되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여당이 선관위의 공정한 판정을 기다리면서 팔장끼고 있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4.13총선이 사상 유례없는 불법·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해 온 한나라당은 윤철상 발언을 문제삼아 총공세를 펴고 있다.
야당은 여러모로 피해의식을 가질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당의 간부가 ‘양심선언’까지 했으니 “선거사범 처리가 ‘야당죽이기 여당살리기’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의욕을 잃고 있다. 새정부 출범이후 2년반동안 계속돼 온 여야의 대결이 이번에는 ‘선거비용 시비’로 제목을 바꿔달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화가 나겠지만 지금 지배적인 민심은 공분(公憤)이 아니라 냉소와 지겨움이다.
이런 현상은 그 누구보다도 김대중정부와 민주당의 불행이다. 정권교체의 흥분과 기쁨속에 출범한 김대중정부가 이같은 분위기속에 집권2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한쪽에서는 남북의 새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실언시비로 시끄럽고, 새로 임명된 장관 한사람은 연일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조용히 집결돼야 할 여권의 에너지가 시끄럽게 깨지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과거 야당시절의 울분을 기억하므로서 야당의 울분을 이해하고,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에 성의있게 대처해야 한다. 과거 자신들이 공격하던 여당의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정권교체를 선택했던 유권자들이 정권교체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잊지말아야 한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 물의를 빚고 있는 사람들은 빨리 물러나서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가장 나쁜 것은 버티다가 실기(失機)하는 것이고, 실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가볍게 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만큼 바닥으로 내려간 정치의 한가운데서 국민에 대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발행인
msch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