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다.”젊은 여성 작가 하성란(33)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처’라고 말한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삿뽀로 여인숙’(이룸 발행)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삶의 상처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삶을 추동해 나가는가 하는 것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그의 이전 작품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단편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등에서 보여준 이른바 ‘마이크로 묘사’ 로 불릴 정도의 세밀한 문장의 전략 대신, 그는 추리소설 같이 속도감 있는 구조를 택했다.
20대의 젊은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방황, 삶의 정체성 문제를 이처럼 읽히는 스토리에 담아낸 감수성이 돋보인다.
20대 초반의 여주인공 진명은 쌍둥이 남동생 선명이 고교 때 교통사고로 죽은 후 환청에 시달린다.
겉으로는 평범한 오피스걸로 사회생활을 하지만 만나는 인물 하나하나, 부닥치는 사건 하나하나에서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징후를 느낀다.
진명이 동생의 죽음에서 받은 상처를 드러내주는 유일한 구체적 물증은 동생이 경주 수학여행에서 선물했던 에밀레종의 모형. 종 하나는 선명이 갖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선물받아 키우고 있는 강아지 목에 걸어두고 있었다.
어느날 진명은 동생이 남긴 노트에서 그가 똑같은 모형종 4개를 샀음을 알게 된다. 나머지 2개의 행방이 드러나는 과정이 소설의 줄거리다.
하나는 동생의 고교시절 여자친구였던 윤미래가 갖고 있다. ‘삿뽀로 여인숙’은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등장하는, 나머지 종 하나가 발견되는 장소다.
‘삿뽀로 여인숙’은 진명이 북한강의 어느 카페에서 들었던 제목도 내용도 불확실한 노래. 듣고 보았던 환청과 환영을 따라 노래가 암시하는 장소를 찾아간 진명은 이곳에서 나머지 종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진명의 아버지가 시골집에 날아온 새를 아들 선명이라고 믿으면서 “젊은 넌 믿지 않겠지만… 나는 믿고 싶다.
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구나”라고 말한다. 독자들도 삿뽀로 여인숙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읽는 이의 의식 깊은 곳을 자극하는 그의 건조하지만 명료한 문장, 숨가쁘게 이어지는 사건의 반전으로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젊은 독자들을 겨냥해 ‘하이텔 문학관’에 연재한 작품이다. 더 많은 독자들을 향한 작가의 관심과 변신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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