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불법대출사건에 정부 고위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자세가 마땅치 않다.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수백억원대 불법대출에 외부입김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검찰이 직접 관련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을 처리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그래서는 공연히 의혹을 키워 결국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는, 지난 의혹사건들의 뼈아픈 교훈을 벌써 잊은 듯한 것이 딱하다.
이 사건은 분명 여느 대출사고와 달리 외부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낳을만 하다. 문제의 은행 지점장은 전결 대출한도가 5억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부실기업 대표인 박모씨 등 3명에게 엉터리 내국신용장을 근거로 500억원 가까이를 불법대출했다.
구속된 지점장은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추가대출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한다지만, 여신감독권을 가진 은행 본점이 묵인 또는 지시했으리란 의혹마저 따른다. 지점장이 불법대출 대가로 고작 1,100만원을 받은 사실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의혹의 가장 큰 고리는 역시 박씨가 고위인사와 친척관계임을 내세웠다는 대목이다. 실제 가까운 친척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은행측이 신분을 사칭한 박씨에게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간 점이 어처구니없다. 은행조직이 그렇게 어리숙하거나 허술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혹과 상식의 틈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박씨 동생의 청와대 근무사실등이다. 이 때문에 의혹이 커졌고, 실제 금융계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문제는 진상규명을 맡은 검찰이 오히려 의혹을 키운 듯한 점에 있다. 검찰은 ‘정부 인사와 박씨는 이렇다할 친분이 없고, 동생도 개입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
진상을 다 파악했다는 얘긴지, 더 알아 볼 필요조차 없다는 말인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렇게 나오면 국민은 으레 의혹을 굳힌다는 것을 모르는지 궁금하다.
결론은 분명하다. 검찰은 어정쩡한 자세로 시간을 끌다가 의혹을 키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지난 의혹사건들에서 저지른 실책에 비춰, 단호하고 빈틈없는 진상규명만이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선택이다. 구속된 관련자들 외에 은행과 외부의 개입여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중차대한 국정과제를 앞둔 정부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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