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받은 다음에 그냥 부러뜨리시면 돼요. 10원짜리 통장 하나 만들어 드릴테니까 별도로 연회비 부담은 없을 거예요.”모은행 직원으로부터 신용카드 발급을 권유받은 회사원 정모(33)씨. 이미 3개의 신용카드가 있지만 경품으로 손목시계를 준다는 말에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또 하나의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카드업체들의 무리한 실적경쟁으로 정씨처럼 형식적으로 신용카드를 만든 뒤 장롱 속에 잠재우거나 그대로 부러뜨려 버리는 ‘휴면카드’가 1,300만장에 달해 지금까지 최소한 300억원 이상이 버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6월말 현재 국내 7개 카드사가 발행한 신용카드는 4,300여만장으로 이중 무려 30%에 이르는 1,300만여장이 6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는 휴면카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별로는 국민카드가 전체 663만장 중 208만장, 외환카드가 564만장 중 176만장, 삼성카드가 803만장 중 249만장으로 휴면카드 비율이 각각 31%에 달했다. 비씨카드는 1,358만장 중 409만장으로 30%, LG카드가 905만장 중 248만장으로 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휴면카드가 급증하는 것은 업체들이 무리한 판촉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발급실적을 높이기 위해 각종 경품과 무료 연회비 등을 내세우며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며 “카드 한장을 발급하는데 2,000~5,000원의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300억~700억원 가량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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