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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대인/(5)설치미술가 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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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대인/(5)설치미술가 함진

입력
2000.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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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미술하고 놀아"함진(23)은 최근 ‘프렌치 프라이’를 튀기다가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 그게 그의 다음 작품이다. 감자와 튀김가루를 사용했지만, 여성 형상으로 만들어 튀겼다.

그가 붙인 이름이 ‘프렌치 프라이 걸’. 여기에 케찹도 발랐다.

프렌치 프라이 걸이 생리중이라면서. 감자 맛이 고소한 프렌치 프라이를 좋아한다는 그. 설치미술가 함진은 미술이란 놀이판에서 ‘장난 치고’ 있다.

“지루한 세상, 되는 일도 없는 세상, 오색창연해 보이지만 다가서면 가식뿐인 세상”에 농담을 건다.

인형의 배를 갈라, 내장처럼 튀어나온 그 솜뭉치로 꽃을 만들어 보라면서. 어린시절 소꿉장난 처럼 말이다.

아직 대학생인 그는 지난해 비영리 대안 공간 사루비아 다방의 첫번째 후원작가로 뽑히면서 우리 곁으로 불쑥 다가왔다.

사루비아 다방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신세대 흐름전’, ‘불경전’‘3자대면전’ 등을 잇따라 가졌다. 이를 통해 그는 ‘소인국의 아이들’이란 기괴한 유머의 세계를 펼쳤다.

0.2㎝부터 10㎝에 이르는 초소형 인형들. 찰흙 뿐 아니라 손톱, 시계줄, 병두껑, 테이프, 성냥 등 주위의 모든 일상적 재료가 오브제였다.

오브제를 뒤집고 꿰맞춰 빚어낸 인형들은 벌레거나, 외계인이거나, 아니면 사이보그를 닮은 인간 군상이다.

그들은 배꼽에 설치돼 모태로 회귀하고자 하거나, 손가락을 깨물며 발악한다.

아랫도리에 성냥개비를 꼽아 성냥갑을 강간하려는 듯 달려드는 인형들.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마치 화장한 듯 하고, 화장이 마치 피흘리는 듯한 이미지의 분열증. 잔혹하면서 가볍고 섬뜩하면서 웃긴다.

함진은 그렇게 인형들을 가지고 놀며 존재의 언저리에서 장난 친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표현한다.”그의 작품을 보며 짓게 되는 묘한 웃음은 무의식적 욕망의 소나기가 해갈효과를 주기 때문같기도 하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유년기에 자폐증에 가까운 외로움을 겪었다. 유일한 대화상대는 인형들. 그들을 맘껏 부수고, 헤집고, 조립했다.

그것은 유아의 욕구 분출이었다. ‘상상적 강간’을 통한 나르시즘적 놀이였던 셈이다. 함진의 엽기성은 여기서 유래한다.

상징적 질서의 어른세계에 편입되지 않은 채, 그는 여전히 유아적 타자로 남아 욕망 놀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엽기는 기존 전위미술의 ‘뜨겁고 진지한 잔혹성’과는 다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충동한 것이 아니라, 유아의 욕망놀이, 그 발랄한 자기 만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불 최정화 이진경의 초기작이나 정수복 등 부산지역 화가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이후 국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기괴하면서 잔혹한 미술이 정치적 아우라를 노렸다면, 이제 그것은 순진무구한 욕망놀이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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