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는 어느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해외에 몇년 가있다 얼마전 귀국했다. 대화는 서울 생활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돌연 그는 우리나라의 많은 일이 ‘조폭성(組暴性)’을 보이지 않는가하는 화두를 던졌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입가에 머물면서도 쉽사리 올릴 수 없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조직폭력배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상당히 가슴에 와 닿았다.
불행히도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 모두가 조직폭력배의 조직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곧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나라가 겨우 ‘조폭의 나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정치권을 보자. 정치는 대화라면서도 여야간 대화는 없고 오로지 자기 주장만 있을 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힘 자랑에 여념이 없고 날치기, 인신감금 혹은 단상점거를 위한 폭력만 있다.
소위 법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조폭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이들이 조폭과 다른 점은 법을 어겨도 쉽게 잡혀가지 않고, 잡혀가도 쉽게 풀려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조폭끼리의 싸움과 달리 TV에 생생하게 중계된다는 사실이 다르다. 실은 조폭의 싸움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급기야는 전문인 집단마저도 집단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의사 약사 은행원 교사 할 것 없이 모두 집단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행위는 우리의 법 제도나 잘못된 정책에서 기인한다.
선진국에도 압력단체(pressure group) 또는 이익단체가 있다.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때로는 생존을 위해 관계 요로에 압력을 가하고들 있다.
이들 단체가 회원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 하는 것은 경제활동의 일부로 치부된다. 이들의 압력성 로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노골적이면서도 교활하기까지 하다.
직간접의 자금지원 및 각종 로비활동은 우리 상상을 넘어 거의 스파이 소설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활동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법을 지키기 때문이다. 법을 어길 경우 매우 엄격한 처벌을 받음은 물론이다. 즉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입법을 담당한다는 국회의원부터가 법 어기기를 예사로 여긴다. 구속 수감이 이뤄져도 빈번한 사면으로 쉽게 풀려나오기까지 한다.
정당 또는 계파의 힘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킬까. 어느 조직에 속하고 그 조직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뿐이다.
힘센 집단에 속하면 잡혀가지 않고 롯데호텔 노조원과 같이 힘이 약한 집단은 맞으면서 잡혀간다. 그리고 각종 농민단체와 노동단체가 심심찮게 도시를 마비시켜도 정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익단체도 만들고 시위도 한다. 이같은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법을 어길 때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 정부는 각 이해 집단의 세력에 따라 달리 대응해왔다. 정부와 정치권이 법대로 행동하지 않으니 국민도 법을 우습게 여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세 과시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터지면 바로 “대통령 나와라”가 예사로 됐다.
이제는 법을 지킬 때도 됐다. 정치권과 정부부터 결연한 의지를 갖고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오성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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