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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동물과 인간/ '우는 동물' 인간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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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동물과 인간/ '우는 동물' 인간의 비애

입력
200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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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나라가 온통 눈물로 범벅이다. 끝에서 끝이 비행기로 그저 1시간 남짓한 이 좁은 땅에서 반 백년씩이나 오갈 수 없었던 혈육들이 드디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자전거를 구해 오겠노라고 나갔다가 50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남편, 깃털처럼 가벼워진 노모를 마치 연인을 품듯 가슴에 안고 다시 오마 흐느끼는 아들, 아들에게 매달려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애걸하는 병상의 노모, 남쪽의 아내가 금목걸이를 팔아 마련해준 쌍가락지를 북에 두고 왔던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내가 죄인이오”를 거듭하며 오열하는 남편.

곤충과 새들은 별 어려움 없이 넘나들고 생쥐들도 우습게 기어 넘던 휴전선이건만 정작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우리는 반세기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서로 다른 이념의 정치체제 속에 갇혀 피붙이도 맘대로 만날 수 없단 말인가. 우리는 왜 조직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로 태어나 이렇게 가슴을 찢어야 하는가. 길이 멀어 못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못 가게 한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동물들은 오고간다. 연어는 저 먼 바다에 나가 살다가도 번식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자기가 태어났던 그 강물로 돌아온다.

뱀장어란 뱀장어는 모두 태평양 어딘가에 한데 모여 집단번식을 하는데 그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죄다 꼭 부모가 살던 강으로 돌아가 성장기를 보낸다. 갈매기들도 번식철이 되면 작년에 함께 신방을 꾸몄던 남편과 아내를 만나려 똑같은 벼랑을 찾는다.

음력설이나 추석 때마다 길 떠나면 고생인 걸 뻔히 알면서도 민족 대이동을 감행하는 게 우리들이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 엄청난 인구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니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미국 사람들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먼 길을 움직인다.

언뜻 보면 동물 세계에서 우리 인간만큼 자기가 태어난 곳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동물도 없는 것 같다. 그 어느 동물이 “해는 저서 어두운데…”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랴 싶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들 앞에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댐을 세운 우리들이 어찌 그들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얼마나 높은 댐인지도 모른 채 그 앞에서 뛰고 또 뛰는 연어들이 철책에 매달려 통곡하는 우리와 무에 그리 다르랴. 철책도 댐도 무너져야 한다.

우리는 어쩌다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우는 동물로 진화했을까. 행동생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슬퍼서 흘리는 눈물과 기뻐서 흘리는 눈물은 그 화학성분 자체가 다르다.

이산가족 상봉현장에는 온갖 성분의 눈물이 다 흘렀으리라. 또 만나자 약속하지만 깊게 패인 주름살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 무엇이 그들을 또 눈물짓게 하는가.

인간이 사회성 동물이라는 사실이 야속하다. 이 세상 그 무엇이 개인의 행복보다 소중하단 말인가. 사회가 무엇이길래 혈육도 마음놓고 만나지 못한단 말인가. 규범이 무엇이고 정치가 무엇이길래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차라리 모기들처럼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면 좋겠다.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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