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쿠르스크호의 비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쿠르스크호의 비극

입력
2000.08.23 00:00
0 0

*최악의 결과에 도시전체 실망바렌츠해에 침몰한 핵잠수함 쿠스스크호의 승무원 118명 전원이 숨졌다는 러시아 해군의 공식 발표이후 러시아 전역이 당국의 무능과 늑장대응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쿠르스크의 비극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400㎞ 떨어진 인구 30만명의 소도시 쿠르스크. 이 조그만 공업도시의 주민들은 러시아 국민들 보다 더욱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쿠르스크호에 복무하는 것을 최대 영광으로 여겨온 이 도시의 젊은이 수십명이 쿠르스크호와 함께 수장된 것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19세 아들이 쿠르스크호에 자원, 입대한 발렌티나 스타로셀체바는“우리는 잠수함이 안전하다고 100% 믿었다”면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군의 격전지였던 이 도시 청년들은 이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딴 최신예 잠수함에 복무하기 위해 3대 1의 경쟁을 벌일 정도로 쿠르스크호 복무를 선망했다.

쿠르스크, 모스크바, 볼가, 멀리 극동지방에서 북해함대 기지가 있는 무르만스크 인근 비두아에보 마을로 모인 500여명의 가족, 친척들은 승무원 전원 사망, 구조작업 중단 발표에 분노했다. 니나 아니키예프(48)는“믿을 수 없다. 이번 작전이 아들 로만의 첫 임무였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대정부 비판 확산

러시아 해군의 무능과 뒤늦은 외국 구조팀 지원요청 등 당국의 늑장 대응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분노와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 의회 의원들은 정부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했으며, 언론의 비난 논조는 더욱 격해지고 있다. 일간 노바야 가제타는 “쿠르스크호 침몰은 폐쇄사회인 러시아의 무능을 알리는 대표적 사례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자 러시아 당국은 생존자 구조작전을 유해 수습 작전으로 전환하고, 노르웨이 등에 지원을 요청했다. 블라디미르 나브로츠키 해군 대변인은 승무원들의 시신을 인양하는데 한달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작전 초기에 휴가를 취소하지 않아 비난을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유가족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리도록 지시, 승무원 1인당 지원금이 당초의 3배인 150만루블(약 5만4,000달러)로 증액됐다. 푸틴은 또 23일을 국민 애도의 날로 선언했다. 한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은 러시아에 조의메시지를 보냈다.

남경욱기자.

*쿠르스크호 선체 처리는

러시아는 최첨단무기가 장착돼 있는 쿠르스크호 선체의 인양을 원하고 있지만 국제전문가들은 방사능 누출 우려를 들어 수장을 주장하고 있다.

쿠르스크호를 개발한 로빈연구소는 이미 구체적인 인양방법을 검토하고 있고 특수케이블이나 공기 쿠션으로 인양하는 방법이 유력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인양 장비와 기술이 미흡해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 선체 파손이 심할 경우 인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주간의 정밀조사를 거친후에야 인양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에두아르트 볼틴 전 흑해함대 사령관은 “준비작업과 예산 부족, 북극해의 기후 등을 고려하면 1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전문가들이 수장을 주장하는 것은 쿠르스크호 내부에 물이 가득 차 전체 무게가 2만5,000톤에 달해 인양도중 선체가 파열되면서 원자로의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9년의 콤소몰레츠호 등 그동안 침몰사고를 당한 대부분의 핵잠수함들은 인양되지 않고, ‘전장무덤’처럼 그대로 수장됐다. 수장할 경우에도 균열을 봉합하고, 원자로를 완전 밀봉하는데 수년이 걸린다.

쿠르스크호 침몰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 장착된 어뢰의 우연한 폭발, 2차대전때 부설한 기뢰와의 충돌, 타국 잠수함과의 충돌 등 세가지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러시아 군은 21일 타국 잠수함, 특히 영국 잠수함과의 충돌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은 이날 ORT TV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주 구조팀이 쿠르스크호의 위치를 찾는 동안 쿠르스크호와 비슷한 크기의 물체를 탐지했으나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인테르 팍스 통신은 군소식통을 인용, “쿠르스크호 침몰지점에서 330㎙ 떨어진 곳에서 다른 잠수함의 난간 파편이 발견됐다”면서 “이 파편이 수년전부터 그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번 사고와의 관련 여부를 성급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영국 잠수함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는 그러나 이를 부인했다.

한편 지금까지 미국과 노르웨이 지진연구소가 쿠르스크호 침몰 당시 2분간격으로 2차례의 폭발이 있었다고 한 반면, 세르게예프 장관은 이날 3차례의 폭발이 있었다고 밝혀 사고 원인 규명이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기수기자

*'인간 물고기' 노르웨이 잠수부

심해작업 15-20년 경력 100m 물속서 30일 버텨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승무원 구조작업 과정에서 전 세계는 노르웨이 심해 잠수부들의 뛰어난 활약상에 경탄했다.

러시아의 최정예 북해함대의 구조대가 쿠르스크호에 접근도 못한채 아까운 1주일을 낭비한 반면, 이들은 30시간만에 비상탈출 해치를 여는데 성공, 승무원 전원 사망사실을 확인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르웨이 심해 잠수부 4명이 군특수부대 요원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 이들은 평소 노르웨이 석유회사에서 해저 유전 발견 및 시추작업을 하는 기술자들이다.

이들이 소속된 스톨트오프쇼어사의 줄리앙 톰슨 대변인은 “잠수부들의 이번 작업은 비극적인 결말을 제외하곤 평소 유전에서의 일과 똑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으로 해저 유전 개발을 위해 세계 최고의 심해 잠수부들을 양성하고 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인 이들은 모두 군 잠수부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으며 심해작업 경험이 무려 15-20년이나 된다. 이들은 100㎙이상 해저의 잠수정안에서 30일을 버틸수 있고, 물속에서는 하루 6시간 작업을 할 수 있다.

잠수부들은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게 제작된 잠수정을 타고 해저로 내려가는데 산소와 헬륨이 혼합된 가스로 호흡하게 된다. 헬륨가스의 흡입으로 잠수부들의 목소리는 갓난 아기 목소리처럼 변해 알아 듣기 힘들다.

이번 쿠르스크호 구조작업에는 노르웨이와 영국의 잠수부들이 각 4명과 8명씩 참여, 3명씩 4개조를 이루어 교대로 생존자를 수색했다.

각자에게 연결된 생명선은 특수잠수복 안으로 공기를 주입하고,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따뜻한 물을 순환시킨다.

이들의 다이빙 헬밋위에 부착된 특수 카메라는 구조작업 상황을 곧바로 바다위의 모선에 전달한다. 구조작업에 늑장을 부리다 국내외의 망신만 산 러시아 정부는 이들에게 시신 인양작업 참여를 요청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