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은 필자의 한 평생을 담은 기록물이다. 저자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가감없이 스스로 기록하는 것 이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나온 소위 회고록이란 이름의 적지않은 기록들이 저자의 육필 대신 대부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 대필이라는 데 실망감이 크다.사람의 일생엔 공(功)도 있고, 또 과(過)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급적 허물은 감추고, 좋았던 일은 떠벌리고 싶은 것이 범인(凡人)들의 짧은 생각이다.
■우리가 ‘백범일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백범이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육필로 드러낸 그의 진솔함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상놈’의 후예였음을 숨기지 않은 백범의 용기는 민족지도자로서 한없는 믿음을 준다.
백범일지가 후생들에게 ‘교과서’가 될 수 있었던 점도 바로 백범의 한점 거짓없는 육필진술이 교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회고록 문화의 일천함 때문인지 모르나 지금 우리곁의 회고록은 대부분이 대필에다 자화자찬 투성이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최근 회고록을 냈다. ‘노신영회고록’이라고 이름 붙여진 책은 그의 32년간 공직생활을 망라하고 있다.
연대별로 정리한 담담한 기술은 사료적 가치로도 충분하다. 특히 그가 27년간 우리외교사에서 남긴 족적은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대기록들이다. 우선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새벽 맑은 정신으로 1년여를 직필했다는 점이 친근감을 준다. 그가 어떤자리에서건 최선을 다했던 공직자로서의 자세는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남아있다.
■외통부내에서 노 전총리만큼 ‘자식농사’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3남2녀가 아버지를 따라 5대양 6대주를 옮겨다니면서도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옥스퍼드 등 명문대학을 나와 사회의 중추로 활동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기록에 자식얘기를 넣은 것은 북녘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외동아들 이름을 부르다 돌아가셨을 부모님께 보고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도 북녘에 누이가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실향민이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노진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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