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이 심상치 않다. 시중 사정은 전체적으로는 풍부한 편이지만, 넘치고 모자라는 부문이 너무 확연히 구분되는 양극화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맞기가 두려운 기업들이 갈 수록 늘고 있고, 추석을 전후해서 한계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할 것이라는 ‘9월 대란설’도 나돌고 있다.그동안 자금시장을 억눌러 왔던 현대 사태가 일단락을 지을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일부 재벌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자금 구하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자금난은 여러 부문에서 감지되고 있다. 부도는 급증하고 있는 반면 창업은 주춤하고 있다. 7월 중 전국 어음부도율은 0.35%로 전달의 0.16%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지난 1월의 0.36% 이후 최고치다.
이에 비해 서울 등 전국 8대 도시에서 설립된 회사수는 3,539개로 6월의 3,948개에 비해 10.3% 감소했다.
기업들은 빠른 경기회복으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규모별·업종별·지역별 등으로 그 격차가 너무 크다.
영업수익으로 이자도 못갚는 기업이 지난해 전체 제조업체 4곳 중 1곳에 이르고 있고, 빚 때문에 영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늘어나는 한계기업들이 4대 재벌에도 8개가 있으며 5~30대 재벌에서는 27개사나 된다고 한국은행은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풍부한 자금이 제대로 돌고있지 않다는 것이다. 돈의 흐름이 차단되고 있어, 자금동맥현상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자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은행은 2단계 구조조정, 예금부분보장제 실시 등으로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동안 기업금융을 담당했던 투신 종금 리스사 등은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시황도 좋지 않아 유상증자도 어렵다. 올들어 7월까지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3.9%가 줄었다. 돈 줄이 막힌 것이다.
정부는 오늘 대통령 주재의 경제정책조정회의와 내일 당정협의회 등을 통해 기업자금난 해소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은 그동안 숱하게 나왔지만,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시장의 현실을 똑바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당장 눈앞의 혼란이 두려워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땜질식의 미봉책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살릴 것은 살리고, 죽일 것은 과감히 죽이는 기업·금융 구조조정만이 해결의 지름길이다. 그래야 시장의 왜곡을 막아 자금이 정상적으로 순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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