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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난 恨 커진 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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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난 恨 커진 孝

입력
2000.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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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ㆍ15 상봉이 남긴 明暗지난 주 내내 온 겨레를 울렸던 8·15 이산가족 상봉은 감동의 크기만큼이나 깊은 흔적을 남겼다.

상봉 가족들마다 재이별 뒤의 견딜 수 없는 상실감으로 인해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하면 오히려 묻어두었던 상처가 덧나 더욱 아파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으로 이번 상봉은 오랫동안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잊고 지냈던 가족의 가치가 새삼 소중하게 인식되는 계기도 됐다.

◆ 덧난 상처와 한(恨)

꿈처럼 스쳐간 짧은 만남이 50년간 마음 깊숙이 갈무리해 온 한(恨)을 건드리면서 많은 상봉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공황발작’ ‘빈둥우리 증후군’등 갖가지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박보배(91)씨는 온 종일 북으로 간 아들 강영원(66)씨의 이름만 되뇌고있어 가족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박씨의 며느리는 “통일 후 고향 전주에서 함께 살자고 한 약속때문인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으시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일성대 교수인 조주경(68)씨의 어머니 신재순(89)씨도 매일 우황청심환을 복용해가며 도무지 잠을 못이루고 있다. 북측 방문단 조진용(69)씨의 동생 진수(64)씨는 “어머니(정선화·96)가 극도의 대인기피증까지 보이고 있다”며 우려한 뒤 “나도 눈이 침침하고 걸음마저 자꾸 헛디뎌지는 등 심신이 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북측의 착오로 기대했던 가족상봉을 이루지 못한 남측 방문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살아 있다던 오빠와 남동생이 이미 죽은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온 김금자(69·여)씨와 김희조(73·여)씨는 충격이 너무 커 곧 병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아픈 몸을 휠체어에 싣고 방북했던 김금자씨는 “차라리 아니간만 못하다”고 눈물을 떨궜다.

◆ 가족사랑의 힘

반면 그리던 가족을 만난 후 삶의 의욕을 되찾은 이산가족들도 적지않다.

위암 투병 중 맏아들 안순환(安舜煥·65)씨를 만난 이덕만(87)씨는 놀랄만한 병세 호전을 보이고 있다. 넷째아들 연환씨는 “병세가 몰라보게 호전돼 집으로 모시고 18일부터 이틀간 동네잔치까지 벌였다”고 기뻐했다.

18일 새벽 아들 량한상(69)시와 극적인 병원 상봉을 했던 김애란(88)씨도 기피하던 영양제를 입에 대는 등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김씨의 손자며느리는 “다시 아들을 만나기 위해거인지 부쩍 힘을 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간 안부전화도 부쩍 느는 등 ‘효도풍(風)’도 주목되는 현상이다. 회사원 정홍대(鄭鴻大·29)씨는 “새벽에 병원에서 어머니와 상봉하는 량한상씨의 모습을 보고 바로 대구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산여행사 관계자는 “실제로 효도관광 문의가 늘고있다”며 “이 참에 부모·자식 등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상봉후유증…전문가들 조언

"후유증 2~4주 지속 긍정적 사고로 극복을"

꿈에 그리던 혈육을 반세기만에 해후한 이산가족 상봉자들이 한동안 상실감이나 우울증을 겪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 더이상 길어지면 문제겠지만 2~4주 정도 불면증 소화불량 두통 설사 등의 증상이 이어지는 것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자신이 신경정신과 전문가로, 이번에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인 누나 김옥배(66·여)씨를 상봉했던 김유광(金裕光·57) 박사는 “헤어진 혈육에 계속 집착하다 보면 심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으므로 빨리 현실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주변의 가족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라’ ‘건강해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식으로 이들을 격려해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이민수(李敏秀·49·신경정신과) 교수는 “이번 만남을 ‘헤어져서 슬프다’로 받아들이지 말고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라”며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는 긍정적 사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첩과 비디오, 가족간의 대화록 등을 통해 상봉순간의 감격을 간직하고 떠올리는 것도 고령 상봉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상일(李相壹·41)씨는 “상봉의 충격과 죄책감을 자원봉사 등 의미있는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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