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문지방을 넘는 지금, 세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대규모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지구상 유일한 냉전지대인 한반도에서조차 남북한 사이에 자발적인 화해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그래서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우리와 큰 이해관계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미국에 매달려온 가장 강한 고리가 ‘안보’였기 때문이다.
올해 민주·공화 양당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를 보면 선거 이슈는 복지 교육 범죄 등 시민생활과 직결된 국내문제로 수렴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가 내년 백악관 주인으로 자리잡느냐 하는 것도 결국 이런 이슈에서 미국 국민이 판가름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나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 모두 미국을 세계 최대강국으로 유지하고 미국 이해를 지킨다는 점에서 대외정책에서 원칙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미국 대통령선거를 여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쇼처럼 구경할 수가 없다. 미국은 세계 정치질서뿐 아니라 경제질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국가이며, 우리는 좋든 싫든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운명에 있다.
따라서 고어와 부시 후보 간에 조그만 정책적 차이점일지라도 우리에게 다가올 때 적잖은 짐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북한 미사일 문제를 들 수 있다. 고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북온건정책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지만, 부시는 다르다.
공화당은 북한을 여전히 불량국가로 보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군사적 강공책을 쓸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대북강경론이 득세하게 되면 남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민감하고 복잡한 게임을 벌여야 하는 불안정 국면을 맞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는 고어 후보의 환경정책이다. 그가 당선되면 미국 정부가 지구온난화문제 등에 적극 대처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유럽과 미국이 연합하여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및 산업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에너지소비국인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대통령은 우리가 뽑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 국민의 선택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응작업이다. 남북문제나 환경문제뿐 아니라 주한미군과 통상문제 등 새 미국대통령 데스크에 놓일 관련 이슈는 많다.
고어나 부시의 개별정책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을 냉철히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미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의 냉철한 태도와 정책담당자들의 통찰과 지혜만이 대미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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