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란 긴 세월의 이별을 3박4일의 짧은 만남으로 메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렇게 또 훌쩍 기약없이 떠날 바에는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하는 단장의 탄식이 가득하다.긴 이별 짧은 만남,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분단 반세기의 벽을 허문 ‘상봉’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중한 만남의 불씨를 아무런 벽없이 자유스럽게 만날 그날까지 이어가도록 우리는 결코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과 평양을 찾았던 남북 이산가족 각 100명이 3박4일의 꿈같은 방문을 마치고 18일 대한항공편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날 아침 마지막 상봉이 이뤄졌던 서울의 쉐라톤 워커힐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은 헤어지기가 안타까운 가족들의 통곡과 몸부림으로 가득 찼다.
못내 헤어지기가 아쉬운 북녘의 할아버지는 이번에 찾은 남녘 손자의 볼에 입맞춤하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늙은 어머니를 들쳐업고 정신없이 뺑뺑이 돈 북녘의 아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제 가면 다시 생전에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 9순이 넘은 어머니는 잡은 아들의 손목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북녘의 작가는 이 비극, 이 처참한 이별을 셰익스피어인들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그렇게 울었건만 그래도 눈물은 쏟아졌다. 아련하기만 했던 젊었을 때 어머니의 얼굴이 세월 앞에 늙은 모습으로 겨우 제자리 잡으려는 참에 또다시 헤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고령으로, 병고로 생명이 꺼져가는 부모와 형제, 아내, 남편을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고 간 그들에게 재회를 보장토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과 북은 그 어떤 일보다 우선해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면회소의 설치가 시급하다. 판문점이 곤란하다면 지뢰밭 일부를 걷고라도 비무장지대 한쪽에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북측의 금강산이나, 남녘 자유의 마을 등 어느 일방에 면회소가 생긴다면 서로가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가 있다. 우리는 그간 몇차례 가장 중립적인 비무장지대 내에 설치할 것을 거듭 촉구한 바 있다. 이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이란 측면에서도 명분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젠 더 머뭇거릴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화와 편지 교환부터 가능토록 하자. 헤어진 가족의 생사 확인 길부터 열어놓으면 다음 단계는 만남의 정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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