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밤낮을 울고 울어도 눈물은 마를 줄 몰랐다. 혈육을 찾아 평양과 서울을 찾은 이산가족은 200명이었지만 이들의 혈연, 1,000만 이산가족, 7,000만 한겨레가 모두 한 몸 되어 가슴을 뜯으며 눈물을 쏟았다. 통곡하는 한반도에 쏠린 지구촌의 시선도 젖었다.나흘간의 상봉 순간들을 보며, 언제 또다시 만날지 기약 없이 또 다른 한을 가슴에 품고 남과 북으로 헤어지는 이산가족들을 보며, 물음을 던져본다. 누가 이들을 갈라놓았는가, 왜 이들이 이다지도 잔인한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는가, 그 동안 남과 북을 다스려온 정치지도자들은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염두에 두기나 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국민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열강의 각축이 분단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지속은 불행히도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 탓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나흘은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남김없이 보여준 나날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50년이나 걸리는 깊고도 긴 세월의 골짜기를 넘어 혈육을 찾아오게 했는가. 통한의 오열 끝에 깊이 패인 주름살마다 채워지는 안온한 미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피다. 피 때문이다. 피를 찾아 50여년을 참고 기다리고, 피를 확인한 뒤 기뻐하며, 안도하는 것이다. 피를 확인하고도 함께 살 수 없음에 다시 가슴을 뜯으며 돌아서는 것이다.
동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새끼를 잃는 것이다. 새끼를 잃는다는 것은 곧 피 흐름의 단절을 의미한다. 혈연과 결별했을 때 동물은 가장 불안해 하고 불행을 느낀다. 같은 핏줄, 혈연을 찾는 것은 뿌리가 물을 찾아 뻗어가듯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가정을 꾸리고, 씨족사회를 이루고, 민족으로 불어나 국가를 세우는 것은 생명의 피가 대대손손 흐르게 하기 위함에 다름 아니다. 피의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바로 인륜을 거역하는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으면서 성장한 에리히 프롬은 유대민족을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을 찾아 헤맨 끝에 그 해답을 피에서 찾았다. 프롬은 그의 저서 ‘인간의 마음’에서 “피에 대한 목마름의 본질,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 있어서의 삶의 도취이다”라고 피의 생명성·영원성을 갈파했다.
피는 숭고하다. 위대하다. 피는 모든 것을 녹인다. 세월도, 원망도, 증오도, 갈등도, 체제도, 이념도, 종교도 모두 녹여 도도하게 흐른다.
모처럼 남북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고 통일을 향한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현재의 남북 지도자는 물론 이들을 이을 지도자들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더 이상 한반도가 눈물의 바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00만 이산가족이 혈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이들의 절절한 아픔을 씻어주어야 한다. 재회의 기약 없는 이별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통일보다 급한 일이 끊어진 혈연을 하루 속히 이어주는 것이다. 피의 재결합을 거치지 않은 통일은 있을 수 없다.
통일 후의 남북주민 간의 이질감 해소와 원만한 화합을 위해서도 이산가족은 계속 만나야 하고, 자유롭게 왕래해야 하고, 종내에는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족의 핏줄이 도도히 흘러간다. 그 무엇도 피의 자연스런 흐름을 끊어놓아서는 안 된다. 정권 유지, 체제 유지를 위한 일과성 쇼나 이벤트로는 50여년간 단절된 남북의 혈맥을 이을 수 없다.
피는 이어져 흘러야 생명이 솟는다. 남북의 피가 흘러야 한반도가 일어서고 한겨레가 산다.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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