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본 이산 상봉이번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은 안타까운 사연만큼이나 많은 기록을 남겼다.
우선 3박4일간 남북 이산가족 200명은 각각 상대측 가족 710명과 11시간동안 만난 것으로 집계됐다. 총 2시간30분에 그쳤던 1985년 상봉에 비해 5배 가량 상봉시간이 늘었다. 상봉 횟수는 단체상봉 1회, 개별상봉 2회, 공동식사 2회, 작별상봉 1회 등 모두 6차례.
이번 행사를 위해 쓰인 호텔방만 서울의 경우 448개. 북측 방문단의 숙소인 워커힐 호텔은 북측 인사와 우리측 지원인력을 위해 240개의 방을, 이들과 만날 남측 가족이 묵은 올림픽 파크텔은 208개의 방을 준비했다. 평양의 상황도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서울에서는 북측 방문단과 남측 가족간 다양한 형식의 상봉이 이뤄진 것도 특징이다. 인원 제한에 걸려 상봉장에 가지 못한 가족과의 휴대폰 상봉, 병든 노모와 자식간의 앰뷸런스 및 병실 상봉, 가족끼리 5섯장의 상봉 비표를 돌려가며 북측 혈육을 만나는 릴레이 상봉, 북측 인사들이 방문하는 장소마다 따라가서 피켓을 흔드는 피켓상봉 등이 연출됐다.
양측 이산가족 100명에는 속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는 북측 방문단장인 류미영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이 아들 및 딸과 재회했다.
평양에서는 지원인력으로 참여한 고(故) 장기려(張起呂) 박사의 아들 장가용(65) 서울대 교수가 어머니와 동생들을, 소설가 이호철(68)씨가 여동생을 만났다. 북측의 고려민항과 남측의 대한항공이 사상 최초로 15일과 18일 양측 방문단을 태우고 서울과 평양을 오고가 남북간 민간항공 직항로를 열기도 했다.
상봉 취재를 위해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국내외 언론은 268개 매체 1,962명으로 정상회담 때의 1,300여명을 훨씬 넘었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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