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손상익씨 '망가, 만화' 분석이번 주 만화 판매순위 중 우리 만화는 고작 다섯 편. 뿐만 아니라 배가본드, 봉신연의, 소년탐정 김전일 등 최근 인기작은 거의 일본만화이다.
사실상 대중문화개방 이전부터 만화시장은 이미 일본에 잠식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 저력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벤치마킹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만화평론가 손상익(45)씨가 펴낸 ‘망가, 만화’(초록배매직스)는 화려한 컷과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일본만화 ‘망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손씨가 가장 먼저 꼽는 일본 만화의 본질은 성(性). 그는 ‘섹스없는 근엄한 만화를 만들라’는 얘기는 곧 앙꼬 없는 찐빵을 만들라는 말처럼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성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근본이기 때문에, 망가에서 빠질 수 없는 코드라는 것이다.
수백 건의 전화방 현장 취재를 감행한 나리타 아키라의 ‘테레쿠라’(전화방), 앳된 얼굴에 성숙한 몸매를 선호하는 ‘로리콘’ , 한국에서는 금지된 남성 동성애를 다룬 ‘야오이’등, 망가의 성은 이미 단순한 벗기기 차원을 넘어서 유형 별로 세분화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표현수위에 제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손씨는 “1950년대 후반 ‘악서추방운동’등 표현규제 역사를 보면 우리와 너무도 똑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기까지 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 만화계의 적극적인 대응과 대중의 호응이 맞물려 결국 서서히 규제는 허물어졌다.
물론 아직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악성 포르노 만화는 우리도 엄격히 차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한다.
지하철의 남녀노소가 신문 대신 만화책을 들고 있는 나라, 여러 개의 전문서점과 코스프레(만화의상 패션쇼) 등 만화가 어떤 고급문화보다 대접받는 일본. 그 저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오타쿠족이다.
이들이야말로 일본 만화의 브레인이라는 것이 손씨의 생각. 이들은 만화 ‘세일러문’에서 여주인공이 착용하는 팬티의 유형별 분석이나 에반겔리온의 여주인공 레이의 진짜 머리 색깔과 주로 사용하는 염색약의 종류 등, 보통 사람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는 사소한 일들에도 정연한 논리로 자기 주장을 편다.
6조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한 ‘포켓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캐릭터의 섬세한 변형과 자유로운 운용은 오타쿠족의 면밀한 분석과 발랄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결국 저자가 생각하는 ‘일본 뛰어넘기’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어설픈 모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행히 양영순의 ‘누들누드’나 윤태호의‘야후’같은 독특한 만화도 나오고 있고, 마니아층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일본 콘텐츠 모방이 아닌 그들의 인프라를 본받는 것이야말로 만화가 ‘망가’를 이기는 길이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