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플 스톰홍콩 현대 액션물이 빨라졌다. 훨씬 리얼해졌다. 더 잔인해졌다. 그리고 깊어졌다. 이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는 더 이상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퍼플 스톰’(Purple Storm·紫雨風暴)은 한동안 주변국가(베트남, 태국, 필리핀)의 현실을 중국인의 삶에 끌어들였던 ‘첩혈가두’ ‘첩혈기병’같은 홍콩 액션 느와르의 연장선상에 있다.
캄보디아 좌익 테러리스트로 자신들의 세상 부활을 꿈꾸는 송(감국량)과 그의 아들 토드(다니엘 우). 영화는 송의 집념과 북한의 생화학무기를 탈취하려다 부상을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린 토드의 정체성 갈등이 중심축을 이룬다.
홍콩 테러진압경찰 반장인 마립(주화건)과 닥터 콴(조안 첸)이 도트의 과거를 새로 주입시켜 송을 잡으려 한다.
비록 그가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모든 과거를 다 지우고 완벽하고 착한 가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정당한가. 콴은 그것이 과학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마립은 인성말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과학이라도 인간을 바꿀수는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바뀔 뿐이다.
문득 스치는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기, 혈연(아버지와 아내)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드가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빠른 영상과 액션, 긴장이 이어진다.
같은 오락용이지만 단순한 우정이나 의리가 아닌 한 개인의 정체성문제로 좁히고 조금은 깊게 그 내면을 다룬 점이 이전 영화와 다르다.
올해 홍콩금상장 최우수 촬영상, 미술상, 편집상 등 6개부문 수상작으로 소재와 상황, 제작규모에서 우리의 ‘쉬리’에 비견되기도 한다. 감독은 ‘신투첩영’의 진덕삼. 성룡이 제작을 맡았다.
오락성★★★☆ 예술성★★☆
▥ 8 1/2 우먼
“나는 아직 영화라는 걸 보지 못했다. 지난 100년간 우리가 본 것은 그저 그림책일 뿐이다” “이야기를 원한다면 소설가가 되어라. 영화 감독이 말고.”
영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이 오만방자한 영화론을 듣고 있으면 그의 영화가 어떨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정부’, 그리고 ‘영국식 정원살인사건’은 그의 영화중 비교적 뚜렷한 이야기 구조의 영화들.
이런 지적 유희를 즐기는 감독들의 영화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추상적인 구도로 변해가는 데 지난해 만든 영화 ‘8 1/2 우먼(8 1/2 Women)’은 매음굴로 변한 거부의 집이라는 도발적인 소재에도 불구, 지극히 정적이고 난해하다.
부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부유한 사업가 아버지 필립(존 스탠딩)을 위로하기 위해 아들 스토리(매튜 들라이어)는 다양한 여성과의 성적 체험을 주선한다.
영화의 배경은 도쿄와 제네바. 두 도시 모두 겉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고도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깊은 성적 유희가 이뤄지는 곳이다.
파친코에 중독된 사마토, 가부키 배우를 흠모하는 미오 등 세명의 일본인 여성, 횡령죄를 뒤집어 써 수녀가 되는 것을 상상하는 그리셀다,
필립의 하녀인 클로딜데 등 8명의 여성과 복장도착증을 가진 반신불수의 질리에타를 합쳐 여성의 수는 모두 8 1/2.
이상적 여성에 대한 환상을 실현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에서 따온 제목으로 펠리니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경배)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희망없는 혹은 노쇠한 욕망의 허무함을, 남성 욕망의 피상성을 드러내고 있다.
성적 환상의 도가 높아질수록 그 허무함의 정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은 지식인 감독의 회화적 연출 기법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
성적 자극을 채우기 위해 감상하려 든다면 매우 실망할 구석이 많은 영화이다.
오락성★★예술성★★★☆ (★5개 만점 ☆는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대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