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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금융시장, 실질적인 대책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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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금융시장, 실질적인 대책 나와야

입력
200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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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제가 어렵게 해결된 이후 금융시장에서 뚜렷한 변화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4대그룹을 빼면 대부분의 중견기업들은 회사채조차 제대로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자금난도 여전한 상태다.기업들은 곧 다가올 추석이 겁이 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하고 자금 끌어들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4대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설비투자규모를 지난해보다 30%이상 늘려 잡았지만 8월 현재 대부분의 투자를 전면 보류한 채 눈치보기만 계속하고 있다.

시중자금이 단기상품에 몰리는 현상은 지속되고 있고 최대 회사채 인수기관인 투신사의 자금여력이 없다는 점 이외에도 하반기 있을 은행구조조정과 맞물려 중견기업 자금사정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현대사태가 봉합되기는 했지만 실물경제를 주눅들게 했던 금융악순환의 뇌관이 제거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의 자금난도 자체적인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따지고 보면 4월 투신권과 종금, 증권 등 직접금융시장이 무너짐에 따라 50조원의 자금이 은행권으로 넘어온 점과 관련이 크다. 구조조정의 기로에 놓인 은행들은 부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자산을 운용하면서 위험이 큰 기업금융을 기피하였고 이중 30조원이 넘는 기업자금이 개인 및 소매금융이나 국공채 매입으로 전환되었다. 심지어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겠다고 국민의 혈세를 17조원이나 들인 제일은행도 안전한 장사인 소매금융만 하겠다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같이 왜곡된 돈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6월 10조원 규모의 채권펀드 조성, M&A 활성화, 투신사 비과세상품 허용 등 고강도의 시장안정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 대책들은 유명무실하거나 시행조차 되지않고 있다. 채권펀드의 조성은 난항을 보이고 있고 M&A를 활성화하기 위해 발행하기로 한 주식형 사모펀드는 규제로 인해 사실상 시행이 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비과세 상품에 3∼4조원의 자금이 들어왔지만 회사채에는 투자하지 않고 안정된 국공채로만 운영하고 있어 기업자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의 고강도 대책은 사실상 모두 실패로 돌아가거나 시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제거되지 않은 악순환의 뇌관 중 또 다른 하나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부실기업 문제다. 현재 워크아웃기업 대부분은 수익을 내지 못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9월 경영평가를 앞두고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 맞추기에 혈안이며, 경기 역시 둔화될 전망이다.

현상태가 지속된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는 워크아웃 기업들과 자금난을 겪고 있는 30대 계열기업군 계열사들이 금융시장 불안의 최대복병으로 등장할 것이다.

결국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한 미국식 직접금융시스템 체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금융불안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규모는 커졌지만 참여자의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은행은 극심한 구조조정의 터널 속에서 시장을 중개할 힘을 잃었고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시장 개입강도를 높여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꼬일대로 꼬인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고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망가진 금융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정상화시키고 직접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킬 새로운 시장조성자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구조조정에 대해 시장신뢰를 회복하는 데 정책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쟁력있는 금융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실물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불안과 기업자금난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정부도 현대처럼 시장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인실·한국경제연구원 금융조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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