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이산가족 회견50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상봉한 남측 이산가족 10명은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트텔에서 내외신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아쉬움과 이별의 아픔 등 가슴저린 사연을 쏟아냈다.
◆상봉소감 ‘넋을 잃고 마냥 울었다.’
정춘자 “처음엔 얼굴을 몰라봤는데 남편이 먼저 알아봤어요. ‘못만날 줄 알았는데…. 옛날 곱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네’라며 손을 꼬옥 잡더군요. 상봉전 마음이 설레고 초조했는데 얼굴을 보고나니 편안해 졌어요.”
황기봉 “나이든 큰 누님이 충격받을까 봐 울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형님을 보는 순간 저절이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가슴이 막혀 말이 안나오고 그저 ‘잘 계셨냐’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여운원 “제가 12살때 형님과 헤어져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보는 순간 형님인 줄 알았어요. 혈육이라 저절로 당겼어요. 형님은 ‘너희들이 살아 있었구나’라고 소리치며 마냥 울었어요.”
박경환 “작은 아버지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보여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어요. 큰절을 올리며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다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주고받은 선물 ‘바람막이 안경 구해다오.’
황기봉 “형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바람이 많이 불어 눈이 아프니 도수가 없는 바람막이 안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김동만 “형님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넥타이와 머플러, 시계 등을 무작정 10개씩 샀어요. 포장과 부피를 최대한 줄였는데도 한 짐이더군요. 미리 가족관계를 알려줬더라면 정말 필요한 것만 했을텐데.”
◆이산의 벽 ‘생각보다 벽은 높았다’
김동만 “가슴에 단 배지에 대해 물었더니 형님이 ‘단순한 배지가 아니다. 아프면 치료해주고 먹고 살게 해준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라고 해 어색해 졌어요. 50년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직업이 뭔지도 말씀 않더군요.”
여운봉 “의약품을 선물했더니 ‘김정일(金正日)장군이 아프면 치료해주고 약주니 필요없다’며 거절해 서운했어요.”
황기봉 “85년이나 지금이나 북측 상봉단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형님이 세이코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김위원장이 줬다’고 자랑했어요.”
◆상봉 아쉬움 ‘상설 상봉장소 개설, 인원제한 폐지 목소리.’
황기봉 “만난 것만 해도 고맙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상봉인원을 5명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코엑스에서 피켓들고 만나려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요.”
김동만 “판문점 등에 상설 상봉소를 만들면 정부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상봉할 수 있잖아요. 만난지 2시간만에 헤어지는 데 시내관광이 어떻게 즐겁겠습니까.”
박경환 “부모님 세대는 분단의 벽을 깰 수 있는 힘을 지닌 분들입니다. 부모님을 통해 젊은 세대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넓혀야 합니다.”
◆이별 심경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슬프다.’
김옥동 “헤어지는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하겠나. 나이가 많아 이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 애를 다시 보낼 생각을 하니 야속해 가슴이 미어져요.”
황기봉 “50년만에 만났는데 3일만에 이별이라니. 내일 워커힐호텔 주차장에서 형님을 환송할 텐데,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여운원 “형님은 ‘어머니가 너무 아프니 모시고 오지 말라’고 만류하더군요. 가시는 형님 모습도 못보는 어머니를 보니 정말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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