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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어학자 시인들도 '역사적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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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어학자 시인들도 '역사적 상봉'

입력
200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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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한글학 최고의 권위로 꼽히는 한글학이사장 허웅(許雄·82)씨와 북한의 류렬(82)씨가 52년만의 해후를 했다. 이날 만남은 허이사장이 통일부측에 “학자로서 류선생을 꼭 만나고 싶다”고 부탁해 성사됐다.1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서 열린 이산가족 방문단 환영만찬장에서 허씨가 먼저 류씨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내가 허웅이요.”류씨도 “한눈에 나도 알아봤습니다”라며 반색했다.

한국전쟁 전 류씨가 홍익대 강사로 재직할 당시 사전 편찬을 함께하면서 친분을 나눴던 동갑내기 두 학자의 말투는 금세 친근한 반말로 바뀌었다.

류씨는 “52년만에 만나니 꿈만 같다”며 감회에 젖었고, 허씨는 “언젠가 일본 오사카에 와서 논문을 발표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갔는데 못만나서 무척 아쉬웠다. 당시 어찌나 섭섭하던지…”라고 말을 이어갔다.

학자답게 두 사람의 화제는 금세 ‘전공’으로 옮겨갔다.

“남과 북의 말이 달라졌는데 하나가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해. 언어가 같아지면 생각도 같아지지. 이게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야.“ (허씨) “여기와 보니까 거리에 써붙인 글이 난장판이야. 민족주체라는건 전혀 없어.”(류씨)

허이사장은 “류선생의 연구가치는 엄청나다”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젊은 후배들이 류선생의 업적을 연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허이사장은 이날 ‘훈민정음 영인본’과 북한 언어학자와 업적을 소개하는 논문 20편이 실려있는 ‘계간 한글’ 3권, ‘풀이한 훈민정음’을 류씨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특히 김계곤 한글학회 부이사장이 49년 류씨의 강의를 들으며 작성했던 노트 복사본을 건네 북에서 온 노학자를 감격케 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고은-오영재씨 "남북 문학誌도 함께 만들자"

“우리는 피를 나눈 친형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국어의 육친이요, 말의 핏줄입니다.”

남한의 시인 고은(67)씨와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吳映在·64)씨는 마치 10년지기를 만난 듯 만찬 내내 꼭 붙어 우리말글 사랑과 시인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감탄하고 두 손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20여년동안 담배를 끊은 고씨의 입에는 오씨가 권한 ‘락원’담배가 물려있었다.

오씨는 “고선생의 시 ‘빈자리’를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 놓을 정도”라며 “이렇게 직접 만나고 보니 가족상봉에 이어 또 하나의 소원이 풀린 것 같다”고 감격했다.

오씨는 또 “6·15남북정상회담 때 ‘백두산’을 낭송하던 고선생의 기백과 정열에 나만 수세에 빠졌다”면서 “나도 낭송기회가 있으면 힘있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웃었다. 고씨도 “오선생의 사모곡이야 말로 온 민족의 심금을 울렸다”고 오씨를 추켜세웠다.

고씨가 “남북의 시인이 백두산 한라산에서, 지리산 묘향산에서 함께 어울리며 통일을 준비하자. 남북 시인이 함께하는 문학지도 만들자”고 운을 떼우자, 오씨는 “남한 잡지에서 북한문학이라고 달리 분류해 소개하던데 어찌 다른 문학이겠는가.

통일시대 문학을 함께 열어가자”고 화답했다. 의기투합한 두 시인은 “시인들이 술 마실 때는 내의차림이 최고”라며 통일이 되면 서로를 집에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만찬이 끝날 무렵 고씨는 “50년만에 다시 들은 ‘오빠’라는 우리말, 그 목소리가 사랑스러워 막내 여동생을 트렁크에 넣어가고 싶을 정도”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오씨를 보듬어안고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지”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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