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이유 거부하던 아내와 해후50년만에 아내를 찾아 남으로 온 남편, 재혼했다는 마음의 빚때문에 선뜻 남편 앞에 나서지 못했던 아내가 벌인 ‘2박3일’간의 숨바꼭질은 결국 ‘해피엔드’로 막을 내렸다.
상봉 첫날인 15일 아들 3형제를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지만 부인 김옥진(78)씨 와는 휴대폰 통화로 만족해야 했던 하 경(74.촬영기사)씨. 마지막날인 17일 하씨의 가슴은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하씨는 오후 3시30분께 워커힐호텔 숙소를 찾아온 가족중에 여전히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체념한듯 “무정도 하지. 오늘 아니면 언제 보려고…”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50여분이 지난 뒤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곤 그토록 오랜 세월 그토록 애타게 그려온 아내가 적십자사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취재기자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던 것.
하씨의 첫 말은 어색함이 잔뜩 밴 “남편이 돼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수줍은 목소리로 “설움도 많았고 분노도 터졌지만 지금은 자식들과 떳떳하게 잘 살고 있어요”라고 받았다.
“당신이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꽤 섭섭했어.”(남편) “미안해서 그랬지요. 6·25때 떠난건 어쩔 수 없이 그런거예요.”(아내)
서먹함이 어느정도 가시자 하씨는 “당신은 지금도 늙지않고 새색시 같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울지도 않느냐”며 농을 건넸고, 김씨는 “속으론 울고있다”고 답했다. 대화하는 동안 두 사람은 예전 연애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내내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손을 놓지 못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두분이 껴안고 뽀뽀도 하세요”라며 서둘러 자리를 비켜드렸다.
50년간의 그리움에 비해 1시간30여분은 턱도 없이 짧았지만 훗날을 기약하는 노부부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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