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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호주제 존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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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호주제 존폐 논란

입력
200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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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호주제가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봉건적 제도로 전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가정의 유대감과 결속력을 강화해주는 미풍양속인 만큼 반드시 존속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유지

/이덕승·안동대 법학과 교수

호주라는 용어가 일제때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가장제도에 도달한다. 가장이란 곧 가족공동체의 대표자이다.

딸을 30세가 넘도록 혼인시키지 못하면 가장이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조선시대 경국대전이나, 종중제도가 가장을 중심으로 운영된 관습 등을 보면 가장제도는 우리의 뿌리 깊은 전통임에 틀림없다. 일본에 의해 그 이름이나 권한, 책임이 변질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설사 전통 문화가 아니라해도 사회의 모든 단체는 그 단체를 조정하고 이끌대표자가 필요하다.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그 명칭이 호주든, 가장이든 반드시 있어야한다. 남북이산가족이 상봉, 눈물의 바다가 되는 것을 보면 가족공동체에는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버드대가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 위주의 ‘나’라는 개념보다는 공동체 의식에 근거한 ‘우리’라는 개념이 우선돼야한다고 생각해 교육목표를 수정했다는 사실을 잘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나’보다 ‘우리’가 우선시되고 있는 바, 이는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둔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호주 승계 순서에서 남성이 앞서있기 때문에 호주제가 남성우월주의를 낳는다고 주장하지만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은 우리 법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호주 승계 1순위인 남성들이 호주가 되기를 포기하면 여성도 얼마든 호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폐지론자들은 우리 옹호론자들이 꽉 막혀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우리 또한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그 결과 호주제가 세계화의 과정에서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있듯, 호주제도 건전한 사회, 건전한 국가관을 형성하는데 장점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남녀평등의 문제 등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더라도 호주 또는 가장제도는 우리의 문화와 국민정서가 변화하지 않는 한 큰 줄기가 유지돼야할 것으로 본다.

■ 폐지

/곽배희·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세계 78위’ 올 6월 유엔의 여성권한척도에 나타난 우리나라 여성의 현주소다. 우리 여성의 권한이 우리나라의 다른 지위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이 뒤떨어진 여성의 지위 한가운데 호주제가 있다. 민법의 친족·상속편을 가리키는 이른바 가족법 가운데 부계혈통, 남계혈통을 명백하게 드러냄으로써 여성 차별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호주제이다. 가족법상 호주제는 그 승계순위를 ‘아들-딸-처-모친-며느리’순으로 규정, 손자가 할머니 어머니 누나에 앞서 호주를 승계토록 함으로써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있다.

혼인외 아들이, 적법한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누나에 앞서 호주가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혼인의 신성함마저도 ‘아들로 대를 잇는다’는 관념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도록 하고 있다. 즉 호주제는 철저하게 부계혈통과 남계혈통만을 우월시함으로써 법적, 제도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다.

부모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관습과 제도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호주제가 없는 나라에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호주제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다. 호주제는 조선 왕조가 받아들인 유교의 종법제에 일제의 천황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일제가 식민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해 호주제를 도입했지만 그것이 유교 전통과 맞아떨어지면서 우리 것인 양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물론 일본도 군국주의 잔재라 하여 폐지한 호주제가, 아름다운 전통처럼 가족법 가운데 자리잡은 채 여성들을 차별하는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이라고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중학생만 돼도 고이 보전해야할 전통과 하루빨리 고쳐야 할 인습을 구분한다. 호주제에 숨막히는 어머니와 아내와 딸들이 양성 평등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기를 맞이할 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진정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 호주제의 역사

호주제는 일제때 생겼다는 게 다수설이다.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일본 호주제가 유입돼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제 옹호론자들은 그 연원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정환담(鄭煥淡) 전남대 법학과 교수는 “경국대전에는 행정 구성 단위로 호(戶)를, 호의 대표로 호주를 각각 설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김성숙(金性叔)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조선시대의 호주는 현재의 개념과는 달리 세금 징수나 호구 조사때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일제시대 조선민사령에 근거해 시행되던 호주제는 1960년 제정된 민법에서 체계를 갖추게 됐다. 호주를 상속하고 호주상속인에게는 재산상속상 이익을 주며, 심지어 호주가 가족의 거주지까지 정하도록 하는 등 일제시대 호주제의 근간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후 여성계 등의 반발이 이어지자 1990년 큰 폭으로 손질됐다. 개정 민법은 우선 호주상속제도를 호주승계제도로 바꿨다. 이에 따라 종래 호주상속인은 원치 않더라도 호주가 돼야했지만 법개정으로 이를 포기할 수 있게 됐다. 분묘 등 제사와 관련된 가족재산의 소유권도 호주 대신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토록 했고 재산상속시 호주 상속인에게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해주던 조항도 삭제했다. 그러나 여성계 등은 혼외자(婚外子)를 입적할 때 남편은 아내의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나 아내는 남편 동의가 필요한 점 등 차별적 조항을 들어 호주제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입법예고된 민법 개정안에는 호주제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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