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스럽던 만남도 결국은 비극이었다. 17일 서울에서 마지막 개별상봉을 마친 북측 방문단은 더욱 절절한 소원을 품고 혈육에게 다시 등을 돌려야 했다. 반세기를 왜 갈라서 살았는지, 왜 또 헤어져야 하는지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북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겠습니까. 벌써 연세가 많으신데…”
사리원 예술대 성악과 교수 서기석(67)씨는 마지막 만남을 위해 호텔방을 찾은 어머니 김금예(90)씨의 손을 잡은 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서씨는 “만나기전보다 더 가슴을 애는 것 같아요. 통일이 어디 하루 이틀만에 돼나요…”라며 구순 노모앞에서 참았던 눈물보를 터뜨렸다.
한참을 엎드려 있던 어머니를 창가로 데리고 가 한강 북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보시라요. 어머니, 꼭 북으로 모시겠으니, 부디 오래 사시라요.”어머니는 오히려 “아니다. 북에는 너혼자 있지만 남에 다른 아들들이 있으니 네가 우리집에 가자”며 아들을 얼싸 안고 흐느꼈다.
● 선산을 찾고 싶다
“좋으면 뭐해…만나자 이별인데…”
자전거 한대 구하러 집을 나섰던 남편 리복연(73)씨와 50년만에 재회한 이춘자(70·여)씨는 안타까운 심경을 떨칠 수 없었다.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 리씨도 “인제 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라며 눈가를 흠쳤다.
전쟁통에 헤어질때 갓난아기였던 장남 지걸(53)·차남 호걸(50)씨는 “경북 안동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져야 할 텐데…”라며 눈물을 떨궜다.
두 아들은 이날을 잊지 않기 위해 ‘아버님 고향방문환영. 2000.8.15. 아들 이지걸 이호걸 드림’이라고 적힌 기념 수건 100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 외조부의 그림을 갖고 싶다
남쪽의 여동생 정춘희(60)씨와 남희(53)씨 등을 만난 북의 ‘인민화가’정창모(68)씨는 자신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외조부 이광열 화백에 대한 회상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정씨는 “국화를 그리던 외조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양미술대학에서 그림 공부할 때 그분 생각을 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또“아호 ‘효원(曉園)’은 외할아버지의 호‘효산(曉山)’을 따 80년에 지은 것”이라며 “그런데도 외조부의 작품은 한점도 갖고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동생 춘희씨는 “오빠가 더 유명해진 것 같아 준비안했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보가 터졌다.
● 다른 가족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방송인 이지연(58)씨는 오빠인 북쪽의‘공훈배우’리래성(68)씨을 만나 종이 한뭉치를 건넸다. 동생 지연씨는 “방송국 아나운서실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달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500통씩 온다”며 “우리는 이렇게 기쁠 수 있지만 그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아프겠느냐”며 20여 가족의 신셍명세가 적힌 종이들을 건넸다.
리씨는 “네가 이산가족 방송을 할때 오빠를 사무치게 그리는 마음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스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다”라며 손을 꼭 잡으며 흔쾌히 응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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