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제도에 대한 환멸이 살인으로"“당시를 추억하자면 그녀는 요즘도, 희미한 흥분에 눈가가 젖어온다. 누군가의 평생을 망쳐버린다는 건 아무래도 흥분되는 일이다.”
백민석(29)씨의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의 여주인공 박태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불특정인 ‘누군가의 평생을 망쳐버리는 일’이 그녀에게는 ‘흥분’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몸에서 분비물이 나온다. ‘목화밭 엽기전’은 제목처럼 남녀주인공의 갖가지 엽기적 행위, 그들에 의해 평생이 망쳐지는 피해자들의 온갖 분비물,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하다.
부부인 한창림과 박태자는 제도적 권력의 상징인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의 서울대공원 동물원, 롤러코스터가 날아다니는 문명의 놀이시설 서울랜드를 곁에 둔 산자락에서 산다.
겉으로 이들은 대학 강사와 수학 과외교사라는 멀쩡한 생의 알리바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수컷 기질’이 있는 사내아이를 납치해 학대하고 포르노그라피를 찍고, 해머로 머리를 쳐서 죽이고, 시체를 삽으로 찍어 파묻어 죽이는 광기의 폭력적 행위를 벌인다.
왜인가. “그애처럼 수컷 기질이 있는 놈들은 아직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 그 이빨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더 자라기 전에. 아직 어린 놈일 때. 수컷들이란, 더 강한 수컷이 나타나면 꼬리를 말고 낑낑대게 마련이니.” 한창림이 이렇게 말하는 수컷이라면, 박태자는 아동 학대에서 흥분하고 스스로의 신체를 훼손하는 매저키즘에서 쾌감을 느끼는 암컷이다.
이 암수컷들은 분명 정상에서 벗어난 괴물적 인간들이다.
한국 문학에도 이제 이런 소설이 등장했다. 시중에 흔한 싸구려 시간때우기용 읽을거리들이나, 스크린과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는 무의미한 폭력과 엽기와 그의 소설은 달라보이기는 한다.
‘과천’과 ‘수컷’으로 비유된 기성 제도와 권력, 20세기까지 인간이 쌓아온 문명과 윤리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살아있다.
평론가 이광호씨는 “이 소설은 이 비현실적인 악몽이야말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의 기초가 아닌가 묻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백씨는 95년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등단해 그간 5권의 소설을 낸 촉망받은 젊은 작가. 그가 올해 3월에 출간한 ‘목화밭 엽기전’은 ‘한국 소설의 새로운 원년을 이룩할 악몽’이라는 평과 함께 ‘컬트나 호러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상투화해버린… 고뇌없는 인간들이 벌이는 살육의 축제’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 상반된 평은 한국 소설의 위상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십세기의 마지막 십년 간 한국 소설에 일어난 주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인간 개체들의 조화로운 종합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조화로운 사회적, 윤리적 삶의 형식에 대한 환멸은 사랑, 우정, 신념, 이성과 같은 인간 통합의 원리들에 대한 냉소를 동반했다.
제도화한 모든 인간관계는 억압적인 권력체계로 비쳐졌고, 일탈, 위반, 전복이 개인들의 자유롭고 충만한 삶의 원천으로 새롭게 발굴되었다.”(평론가 황종연)
종합하면 젊은 세대의 세상에 대한 환멸에 따른 반동으로서의 일탈이 엽기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작가 백씨는 이렇게 말했다.
“변태포르노 등 엽기가 가장 활개치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입니다. 꽉 짜인 조직사회이기 때문이지요. 한국도 키치, 컬트의 문화적 코드화를 거쳐 이제는 엽기가 젊은 층의 화두입니다.”
그는 실제 몇 달 전 과천에서 자식에 의한 부모 토막살해사건이 일어난 것을 예로 들면서 “잘 관리된 사회의 속모습은 실로 엽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엽기문학과 작가들
"교양문학 그건 내다버려"
읽기에 편치 않은 문학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문학의 효능이 기본적으로 정신의 안정적 고양에 있다는 입장에서 보면, 역겨워 집어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 ‘엽기적’인 것들이다.
올해 3월에 나온 김언희(47)씨의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똥 핥는 개처럼 당신을,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는 작가의 엄포성 서문으로 시작한다.
실제 그의 시집은 토막난 시체, 비끄러져 나온 내장, 악취나는 오물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구멍’같은 단어들로 가득차 있다.
시인은 ‘꽃이란/ 꽃은/ 핀 지 사흘만 지나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평론가 서영채씨는 “신체(body)가 정신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면 육체(flesh)는 그런 관계나, 중앙의 통제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신체”라며 김씨의 시가 “육체의 감수성을 극단화함으로써, 정상성을 벗어나 촉수를 뻗어나가고 있는 우리들의 리비도를 형상화해낸다”고 평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문학도 스스로 하위문화를 자처하며 위악(爲惡)적인 엽기적 포즈를 취하는 작가들을 몇몇 가지고 있다.
김씨는 시 ‘달걀 속에서 주르륵’에서 ‘정화조로 가는 길은 변기 구멍밖에 없을까…나는 포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할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서영채씨는 백민석씨와 함께 김언희씨, 그리고 장정일씨를 묶어 “우리 문학사는 이제 괜찮은 역겨움을 또 하나 갖게 되었다”고 평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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