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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상봉/ 南남편-北처자 평양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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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상봉/ 南남편-北처자 평양상봉

입력
2000.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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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현씨 가족“미안하오. 무엇으로 지난 세월을 보답할 수 있겠소.” 1951년 봄 인민군 입대 통지서를 받고 헤어진 남쪽의 남편 최태현(69)씨. 16일 고려호텔에서 가진 개별 상봉에서 북쪽의 아내 박태용(71)씨의 여위고 가는 왼손 약지에 준비해간 서돈 짜리 쌍금가락지를 끼워주며 세월의 덧없음을 탓했다.

최씨는 남편이 방금 건네준 금가락지가 반세기 단절의 세월을 이어주기나 한 듯 말없이 고개 숙인 채 만지고 또 만졌다.

“내가 다 버리고 남쪽으로 갔는데 혼자 살며 애를 잘 키웠소. 그새 못한 것 조금이라도 보답될까 해서 준비했소.”

15일 첫 단체 상봉때 50년 세월의 한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낸 때문일까. 긴 단절의 쑥쓰러움에 남편의 손길을 말없이 받고 있던 최씨의 얼굴에도 엷은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다.

최씨가 50년간 간직했던 꽃다운 스무살 아내 얼굴은 이제 박씨에게서 찾을 수 없었지만 최씨에게는 그 때 아내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기만 했다. 최씨는 “그 때는 밭일도 많이 하고 일하다 새참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도 잘 안한다”며 아쉬워했다.

최씨는 헤어질 때 겨우 네살이던 아들 희영(53)씨와 남동생 태화(67)씨에게도 반지와 시계를 끼워주며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하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최성록씨 가족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 됐나?” 50년만에 만난 아내 유봉녀(75)씨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최성록(79)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죄인이다. 같이 살지 못하고 50년이나 걸렸으니….” 최씨는 아내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어루만지며 통한의 세월을 달랬다. 50년 1·4후퇴 때 피신하며 생이별한 아내, 두 딸을 15일 처음 만났지만 그 당시 핏덩이였던 아들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최씨는 다시 만난 아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건 며느리 줄라고 준비한 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와 유씨는 헤어진 후 각각 남과 북에서 재혼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별했다. 최씨는 재가한 후에도 계속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며 두 딸 춘화(55) 영자(53)씨를 키워준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춘화, 영자씨는 “아버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마음속으로 그리곤 했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꿈만 같다”며 아버지의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최씨 가족들은 최씨가 미리 준비해간 남쪽의 가족 사진을 들여다 보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고려호텔 최씨의 방에 모인 가족들은 때론 얘기 꽃을, 때론 울음을 토하면서 서로 “오래 살아 다시 만나자”고 거듭 약속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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