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악화 민병옥.박성녀할머니 남북당국 배려로 아들 만나병환으로 단체상봉에 참가하지 못한 노모를 위해 15일 밤 극적인 ‘앰뷸런스 상봉’이 이뤄졌다.
노환에 탈수증상이 겹쳐 코엑스 상봉장에 가지 못한 민병옥(97)·박성녀(91)할머니는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남북 적십자사측의 배려로 꿈에도 그리던 북의 아들 박상원(65)씨와 여운봉(66)씨를 각각 앰뷸런스 안에서 만나 50년만에 모자(母子)상봉의 한을 풀었다.
다른 이산가족처럼 애타게 상봉을 기다려온 민한머니는 이날 돌연한 설사로 탈진, 숙소인 올림픽파크텔을 나서지 못했다. 평소 변비가 심하던 민할머니가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전날밤 관장약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상봉장과는 버스로 불과 20분 거리. 민할머니는 “50년을 기다려온 아들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못만난다니…. 휠체어를 타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며 절규했다. 박성녀할머니도 안타까운 사정은 마찬가지.
노환으로 호텔 입소 때도 거동이 불편했던 박씨는 상봉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료진의 소견에 따라 단체상봉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남북 양측은 긴급협의를 통해 밤 10시30분께 두 노모를 아들들이 묵고 있는 워커힐로 급히 옮겼다.
이념의 벽도, 병마(病魔)도 모자간의 질긴 정을 끊지는 못했다. 상봉장소는 1평 남짓한 앰뷸런스 안. 두 모자는 40분간 좁은 차 안에서 꼭 부둥켜안고 끝없이 눈물을 쏟았다.
50년만의 큰절과 함께 “오마니, 아프지 말고 100살까지 사셔야 합니다”라는 박씨의 말에 민할머니는 ”살아 생전에 또 언제 만나겠느냐”고 흐느꼈다.
박 할머니도 아들 여씨를 부여잡고 “운봉아 이제 왔느냐”며 통곡했다. 박 할머니는 상봉 직후 긴장이 풀린 탓인지 탈진, 급히 현대중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행히 위급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우리 아들 볼 수 있게 해주시오. 단 한번만이라도….”
북쪽 가족의 착오와 인원 제한 등을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대상자 명단에서 빠진 남쪽의 혈육들은 ‘50년 손님’을 지척에 둔 채 TV 화면을 통해서만 눈물의 재회를 해야만 했다.
이순례(90·여)씨는 북쪽의 아들 김규열(金圭烈·68)씨를 코앞에 두고도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단정한 규열씨가 이복동생 김창렬(金昌烈·60)씨의 가족들만을 상봉희망 명단에 기입한 것.
이씨는 “50년만에 북에서 아들이 내려왔는데 어머니를 못만난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냐”라면서 “안 오니만 못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잠시라도 좋으니 꼭 한번만 규열이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며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을 붙들고 통사정했다.
김원태(金元泰·67)씨와 김정남(金正男·64·여)씨는 아직도 기억에 또렷한 북쪽 형제인 정태(政泰·72)씨가 서울 강남구 COEX에서 남쪽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을 TV를 통해서만 지켜봤다.
이들이 친형제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정태씨가 심인(尋人)신청서에 자형이자 초등학교 동창인 신영묵(申英默·75)씨와 자신과 정이 깊었던 형수 박정우(朴貞宇·69·여)씨를 먼저 올렸기 때문. 결국 신씨와 박씨 그리고 정태씨의 형 규태(圭泰·74)씨, 누이 귀정(貴貞·70·여)씨와 귀남(貴男·68·여)씨가 첫날 집단상봉에 참석했다.
정남씨는 “형부와 올케가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적십자사가 이미 상봉자 명단이 확정된 관계로 집단상봉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말도 못하게 섭섭하다”고 울먹였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북의 가족들과 논의를 거친 뒤 만나지 못한 친지들과의 상봉도 주선해 보겠다”고 밝혔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北측 최고령 상봉
“올케,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는군요.”
북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로 비날론(나일론) 개발자인 리승기(1995년 별세) 박사의 부인 황의분(84) 할머니는 올케 강순악(86)씨와 조카 황보연(62·한양대 생활체육과 교수)·준연(서울대 음대 교수)씨 형제 등 친정쪽 식구들을 보는 순간, 50년간 참았던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 했다.
깔끔한 노란색 한복저고리에 지팡이를 짚은 채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상봉장으로 들어선 황할머니는 강씨와 마주하자 “올케, 살아 있었군요. 조카들도 이렇게 변했구…”라며 강씨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강씨도 “50년이 지났는데 곱던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었다”고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황할머니는 시누이 이세기(90)씨가 건강악화로 호텔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자 “얼마나 아픈 거냐. 여기까지 와서 볼 수 없는 거냐”며 검버섯 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졌다. 황할머니는 “친정·시집 식구들과 헤어진 뒤 한시도 가족 생각을 놓은 적이 없다”며 “남편의 50년 한을 이제야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