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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유명인사 상봉현장/ "나에게 딸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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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유명인사 상봉현장/ "나에게 딸이 있었다니..."

입력
200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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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영웅 백기택씨 딸 상봉여동생 만나러 왔다

자신도 모르는 딸 만나

“아버지 저 금옥이에요, 아버지 딸말이에요.”

5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남쪽의 여동생들을 만나러 온 북한의 ‘노력영웅’백기택(68)씨는 딸과의 뜻밖의 만남에 한동안 숨이 멎은 듯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시라’는 안내원의 말도 들리지 않는 듯 문옥(67)씨등 여동생 3명과 부둥켜 안은 채 발을 구르며 한참을 오열했다.

“넌 누구니?” 백씨의 시선이 한 구석에 있던 낯익은 얼굴에 멈췄다.

“오빠, 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 오빠딸.”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 호적상 백씨의 조카로 돼 있는 딸 신금옥(50)씨는 그제서야 아버지의 품에 안겨 통곡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딸이 있었다는 사실에 백씨는 50년 세월이 원망스러운듯 긴 한숨만 내쉬었다.

1남5녀중 맏이이자 4대독자인 백씨는 고향 강원 화천이 38선 이북이던 한국전쟁 당시 18세의 나이로 인민군에 입대하면서 가족과 생이별했다. 백씨는 그후 북한에서 축산 작업 및 채소 생산에 성과를 거둬 북한 최고영예인 ‘노력영웅’칭호를 얻었다.

/정녹용기자 1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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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최고 국어학자 류렬씨 딸 상봉

"너만홀로 외가로 보내..."

"꿈만은 아니겠지요 아버지"

“아버지 저 금옥이에요, 아버지 딸말이에요.” “내 딸이 이렇게 컸구나….” “꿈은 아니겠지요. 아버지! 아버지!”

북한 최고의 국어학자 류 렬(82)씨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딸 인자(仁子·59)씨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그저 흐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인자씨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채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곧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왔어요.” “1·4 후퇴 때 너만 홀로 외가인 진주에 내려보낸 것이 생이별로 이어질지 이 애비도 미처 몰랐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류씨는 “13년전 돌아가신 네 에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네 이름만 불렀다. 눈과 코가 네 에미를 쏙 빼닮았구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큰 절을 올린 인자씨는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보고 싶을 때면 한 장 남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라면서 고이 간직해 온 빛바랜 사진을 꺼내들다 복받치는 감정에 다시 한 번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반 백년 헤어짐의 날들이 그토록 서러워서일까. 부녀는 이제 헤어지기가 두려운 듯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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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직부문기술의 대가 조용관씨 아들 상봉

"정말 아버지신가요"

"니가 내아들 경제 맞니"

“아버지 왜 이제 오셨나요….”“니가 두살때 두고 온 내 아들 경제 맞니? 니 어머니는?” 반세기만에 만난 부자는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울고 떨었다.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 조용관(78)씨와 50년만에 해후한 아들 경제(52·호주이민)씨. 북한에서 방직부문기술의 대가로 교수·박사·공훈과학자라는 칭호를 받고있는 그지만 자식들 앞에선 설움에 눈물을 주채하지 못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제가 스무살 되던 해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를 늘 그리워 하셨죠.” “니 엄마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았는 데 가버렸구나.”조씨는 가족 중 부인을 맨 먼저 찾았지만 호주에서 날아온 아들과 딸 경희(50·호주 이민)씨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경희씨는 “아버지! 정말 아버지신가요?”라며 조용히 눈물만 훔쳤고, 조씨는 그 딸을 “네가 그 갓난애 경희로구나”라며 50년만에야 보듬었다.

조씨의 여동생 옥순(77)씨도 “정말 우리 오빠 맞느냐”며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조씨는 아들과 딸, 동생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이렇게 살아있으니 우리 만나는구나. 지나간 세월만 아니었더라도…”라며 회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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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가 정창모씨 여동생 상봉

"춘희야... 남희야..."

넋 잃은듯 이름만 외쳐

“춘희야, 남희야. 이게 얼마만이냐” “오빠, 오빠….”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통하는 정창모(鄭昶謨·68)씨는 여동생 춘희(60), 남희(53)씨를 만나자 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제정신을 잃은 듯 이름을 외쳐댔다.

부둥켜 안은 오누이들은 기나긴 이산 세월을 보상받으려는듯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 비벼대며 골육의 정을 나눴다. 남희씨는 오빠의 손을 꼭 잡은 채 “10년 전 미국에 다녀온 친구가 오빠의 소식이 실린 ‘평양’이란 잡지를 갖고 와서 그제서야 오빠가 살아계신 걸 알았다”며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고 눈물을 훔쳤다.

10여분간의 통한의 눈물을 흘린 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창모씨는 춘희씨가 부모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유품인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다시 한번 오열했다.

특히 이날 전주에서 동양화가로 활동중인 창모씨의 조카 진규(30)씨가 자리를 함께 해 이산세월도 화가 집안의 명맥을 끊지 못함을 확인케 했다.

창모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 5학년(19세)때 의용군에 입대, 월북했으며 금수산 기념궁전에 비치된 대작 ‘비봉폭포의 가을’을 완성, 1977년 공훈 예술가, 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금강산’‘군사분계선’등 100여점은 북한의 국보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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